이에 본보는 문명의 전환과 맞물려 통일의 길목이 있는 분단된 대한민국의 아픔을 치유하는 길은 무엇이며 경기 새천년의 미래를 어떻게 열어가야 할지 지리학적 관점에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보와 경기연구원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가 주관한 경기천년 기념 학술세미나가 지난 19일 경기연 대회의실에서 ‘경기 천년의 지도와 경기도의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날 김종혁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부회장(고려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4차 포럼에는 박수진 서울대 교수가 ‘경기도의 자연환경과 경기도의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했으며 장지연 대전대 교수는 ‘고지도와 역사경험을 통해 본 지역정체성의 구축 사례’를 개성을 중심으로 발표했다.
또 미국 반도체 전문기업 Wafer Masters 유우식 박사는 ‘고지도의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와 그 활용방안에 관한 제안’을 경기도 고지도를 중심으로 발표했고, 홍영의 국민대 교수는 ‘고려, 조선의 나라의 배꼽, 경기ㆍ경기도의 위상-군현 영역의 변화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주장을 펼쳤다.
이번 포럼은 역사와 공간을 초월해 역사지리학적 관점에서 경기도의 정체성을 찾는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경기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정치적 역학 관계에 따라 지리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표출해 왔다. 이것이 미래 새 천년을 열어갈 경기도의 역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박수진 서울대 교수- ‘경기도의 자연환경과 경기도의 정체성’
경기도는 한반도의 서쪽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면적은 전국토(9만9천652㎢)의 약 10%에 해당하는 1만184㎢이다. 경기도의 북쪽으로는 휴전선(86㎞), 그리고 서쪽으로는 서해로 둘러싸여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남쪽으로는 충청도와 면해 있다. 경기도의 중앙에는 서울이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에는 경기도에서 독립된 인천시가 위치하고 있다.
동북쪽에서 뻗어 내린 고아주산맥의 영향으로 경기도의 동북쪽은 산악지대를 이룬다. 하지만 그 영향에서 벗어난 남부와 서부지역은 평야지대와 구릉지가 넓게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에는 남북과 북동-남 방향의 뚜렷한 구조선이 나타나며 이 구조선들을 따라 하천들이 흘러가고 있다. 서해안은 해안선이 복잡하고 서해의 조석간만의 차가 10m에 달한다. 그 결과 많은 섬과 반도,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는 간석지의 발달이 탁월하다.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은 경사도가 매우 높다. 중국은 비교적 경사도가 낮다. 한국은 금수강산 복잡한 지형, 높은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대규모 평지가 없는 지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 일본과 비교하면 경사가 높다.
반면 일본은 산과 평지가 명확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평지에서 산지 접근이 어렵지만 한국은 완사면을 통해 산지 접근이 쉬워 전체적으로 난개발이 됐다. 1975년 이전 토지이용에 있어 농경지가 중요했지만 이후 탈농에 따라 다른 형태의 토지 이용이 중요해졌다. 경기도는 에코시스템 서비스가 높은 지역이다. 에코시스템 허브의 중심인 반면 가장 많이 훼손되고 줄어드는 것도 경기도다.
한반도의 유역 특성을 보고 풍수의 기본 원리 자체가 수박이 아닌 포도로 봤다. 포도의 다양한 형태를 풍수 이론에서 나타나고 있다. 풍수가 많이 비판을 받고 있는데 자연과학적으로 보면 유역 중심으로 보는 사고가 우리나라 지형적인 특성이나 구조적인 이론들로서는 긍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환경 결정론, 환경 가능론 자연이 움직이는 방향을 인간이 도와서 움직이는 상보성을 생각하면 경기도가 가지는 지형적 특성을 활용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장지연 대전대 교수- ‘고지도와 역사경험을 통해 본 지역 정체성의 구축 사례-개성을 중심으로’
개성은 고려 건국 이전까지 변경 중의 변경으로서 주목되지 못했던 지역이었다. 고려 건국 이후 왕실은 이러한 개성의 권위를 북돋우기 위해 적극적인 조처들을 취했고, 500년의 역사가 축적되면서 상당한 심상적 위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 건국 후 수도의 인구가 빠르게 한성으로 유출되면서 개성은 급격한 쇠퇴에 직면하게 됐다.
개성의 새로운 정체성은 바로 이러한 위기에서 구축되기 시작했다. 지역민들은 ‘옛 수도’라는 위상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했다.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구축하려고 하는 시기는 상대적으로 위기의 시기인 때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지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그들의 위기의식과 관련이 깊다.
정체성은 새로운 사상 조류 속에서 재해석되며 새롭게 구성된다. 개성의 고려 유민 의식이 조선 후기에는 절의를 강조하던 맥락이었다면 근대 시기에는 망한 조선에 대한 대안이자 새로운 시대 조류에 걸맞는 상업 도시이자 근대인의 이미지로 재해석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개성은 현재 남한과 북한의 변경인 동시에 통합의 상징으로 새롭게 주목될 가능성 역시 열려 있다.
개성이 그러했던 것처럼 경기 역시 새로운 정체성 탐색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경기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의 구심력에 빨려 들어가는 외핵이며 남한과 북한이 경계를 맞대는 변경이기도 하다. 가장 최첨단을 달리는 기술적, 문화적 기반이 조성되는 장소이자 몇 십 년 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DMZ와 같은 천연의 자원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묘한 모순이 공존해 온 지 반 세기가 넘은 지금, 경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롭고도 적극적인 자기 탐색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지방 자치가 중요한 시대적 가치로 대두되고 있으나, 고유의 지역색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힘든 지역이 경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기가 자기 정체성 구축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때, 묵은 세월의 모순과 위기 역시 새로운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유우식 박사- ‘고지도의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와 그 활용방안에 관한 제안 -경기도 고지도를 중심으로’
산업혁명이 무엇인가. 기회를 바탕으로 생산성이 향상된 것을 산업혁명이라는 하는데 △1차 산업혁명은 동물ㆍ인력에서 동력(증기기관) 개발 △2차 산업혁명은 동력에서 전기, 모터의 개발 △3차 산업혁명은 장소적으로 제한된 자동화 △4차 산업혁명은 전자, 정보,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설명된다.
지도는 평면의 이미지이기 때문에 정량적으로 해석을 해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은 정보의 발굴, 생산, 저장, 공유, 활용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고지도와 현재 지도를 보면 경기는 고려시대부터 표기됐고 경기도의 면적은 줄어들었다. 서울과 인천, 북한 등에 의해 분할되면서 경기도는 축소됐다. 하지만 인구는 크게 늘어 대부분이 시로 승격됐다.
고지도를 보면 기라는 것은 수도 중심으로 왕도를 표시한 것이다. 수도에 가까운 지방 왕도에 대해 사방으로 500리 정도를 얘기한다. 지역별로 거리 정보, 수도까지 정보 등 여러 가지 정보가 나와 있다. 고지도는 누구를 위해 만들었고 어디서 썼는가가 의문스러웠다. 현재 고지도의 분석을 통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이 부족한 것 같다.
지류 문화재로서의 고지도는 내용물, 제작배경, 제작시기, 제작방법, 제작자, 사용자, 전래이력, 지류 물성, 인쇄 또는 채색재료, 보존상태, 보존방법, 복원방법, 자료기록, 공유, 활용의 방식으로 데이터베이스화될 수 있다.
고지도의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와 그 활용 방안을 제안한다면 데이터베이스의 제공대상과 내용을 결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지류 고지도의 현대적 기업을 적용해 재조사할 필요가 있다. 내용, 재질, 먹, 안료, 도료, 오염, 훼손, 인쇄압력, 현미경 사진촬영 등으로 조사할 수 있다. 목판 고지도의 3D프로파일 측정을 포함한 재조사와 금속 고지도의 원판 조사 등이 이뤄져야 한다.
조사 자료의 발간과 공개 서비스 제공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지속적인 문화재 관리 대책을 수립하고 추가 자료의 발굴과 자료화가 필요하다. 특히 문화재용 3D 프로파일 장비개발과 이미지 프로세싱 기법의 도입 등 고지도의 체계적인 재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홍영의 국민대 교수- ‘고려, 조선의 배꼽, 경기·경기도의 위상 군현영역의 변화를 중심으로’
고려 정부는 경기에 대해 “경기는 사방의 근본이요, 왕의 교화가 우선하는 곳”이라는 등의 말과 함께 자주 세금을 감면한다든가 구휼(救恤)과 같은 구제활동을 빈번히 행했는데, 이는 여타의 지방과는 다른 대우를 한다는 측면도 있었지만, 경기가 개경과 가까운 고을이었기 때문에 개경에서 벌어지는 각종 공사나 잡역에 시달리는 불만을 잠재우려는 측면도 컸다. 일반 행정구역이 된 조선시대에도 경기도의 지위는 다른 지방보다는 높은, 으뜸 지방이었고, 전 왕조 때를 감안해 경기 백성들의 잡역 문제를 시정하려는 노력이 자주 행해졌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고려의 경기에서 얻은 경험을 충실히 반영했다. 현실적으로는 경기를 도제에 따라 운영하면서도 명분적으로는 경기가 갖는 이념과 원리를 표방하는 이원적인 정책을 취했다. 이는 곧 명분과 실리를 조화롭게 추구하는 방식으로서, 조선적인 경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국도(國都) 한양은 곧 그러한 이상과 현실을 조절하고 실천하는 상징이었고, 경기는 이를 뒷받침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특히 조선의 경기가 고려에 비해 크게 늘어난 까닭은 기본적으로는 고려의 전시과(田柴科)와 녹과전(祿科田) 운영에 따른 경험과 교훈을 기반으로 신왕조의 물리적 기반을 안정적으로 확보한다는 데에 있었다. 동시에 관료들의 과전을 경기에 한정함으로써 토지제도의 문란을 방지하고 중앙 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가 맞물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경기 영역의 확대는 곧 조선왕조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안정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배경이 됐다.
세미나를 주관한 양보경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고문(성신여대 교수)은 “경기도는 어떠한 지역인가. 역사 지리학 고지도를 통해 경기 천 년의 뿌리와 변화를 찾아보고자 했다”며 “경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롭고도 적극적인 자기 탐색이 필요한 시기다. ‘경기 정명 천년’이 경기도의 정체성 확립하고 경기도민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한편 한반도 통일, 4차 산업혁명 등 국내외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신성장 동력 발굴의 기회를 창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박경 성신여대 교수와 정학수 강화역사문화센터, 박종진 숙명여대 교수, 김현종 한국중앙연구원 연구원이 종합토론자로 나서 역사문화지리학적 관점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최원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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