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국회가 거의 통째로 부패했음을 보여준 나라, 그건 이태리다. 특히 이태리 범죄의 특징으로 이름난 마피아와의 관련이 제일 심각했다. 이런 가운데 1992년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장한 것이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 당시 42세의 젊은 검사 피에트로는 집권당 거물 국회의원 카라를 구속하는 등 많은 정치인, 기업인, 관리들을 감옥에 보내며 마피아 범죄 소탕에 밤낮없이 질주했다.
미국 영화 ‘대부(代父)’가 말해 주듯 이태리 마피아는 뉴욕을 비롯 세계 주요도시의 마약, 도박장, 호텔, 부동산, 밀수 등을 손에 넣고 온갖 비리를 다 저질렀다. 그래도 국가 수사기관이나 정치권이 그들과의 연결고리 때문에 손을 제대로 쓰지 못했던 것. 심지어 마피아는 그들 조직에 맞서는 검사, 판사, 정치인들에 대한 살해도 서슴지 않았고 피에트로 검사 역시 그런 암살 위협을 받으면서도 소신껏 밀고 나갔다.
오히려 그는 악명 높던 마피아 두목 살 바트레리나까지도 구속시켰고 이들 거물들에 대한 구속을 집행할 때는 TV로 생중계를 함으로써 한껏 분위기를 높였다. 이렇게 되자 피에트로 검사의 인기는 대단하여 티셔츠나 맥주컵에까지 그의 사진이 등장했고 정부는 그에게 장관직을 제의하기도 했다. 국민들은 이와 같은 검찰의 사정 바람을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 운동이라 불렀다.
사실 이때까지는 정부에서 지하철 공사를 할 때, 1㎞당 800억리라를 책정했으나 ‘깨끗한 손’ 운동이 시작되면서 440억리라로 대폭 삭감됐다. 그러니까 그동안 정부에서 발주하는 공사비가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 국민 세금을 흥청망청 축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에트로 검사가 주축이 된 ‘깨끗한 손’ 운동은 여기까지였다.
너무 지나친 사정 바람은 경제를 위축시켜 10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했고, 대형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검사들이 나라를 망친다는 원성도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며 사임 압력이 가해졌다. 결국 국민영웅 피에트로 검사는 1994년말 사표를 냈고 ‘깨끗한 손’ 운동은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금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것을 보면 유럽에서 부패척도를 말하는 투명성에서 여전히 이태리는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스웨덴, 스위스 등이 1, 2위를 자랑하고 있다.
왜 이태리는 ‘깨끗한 손’ 운동과 피에트로 같은 젊은 검사들에 의해 순교자적 부패척결이 진행됐음에도 여전히 부패지수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에 대해 지금은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피에트로는 “병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는 찾아냈지만 환자 격리와 항체 개발의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고백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부패와의 전쟁을 벌여 획기적인 성과를 올렸음에도 ‘환자 격리’와 ‘항체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고백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환자 격리’는 부패의 상징처럼 되었던 기민당 등 기존 정치권을 무너뜨리는데는 성공했으나 그 주역들은 여전히 정치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며, 또 법보다 친족지연 등을 더 중요시하는 이태리 국민성을 지적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같은 반도국가에 국민성도 이태리와 비슷하다는 우리. 고위 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의 설치안이 발표되었으나 피에트로 검사의 고백 또한 되씹어 봐야 할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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