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이 멈춘 ‘참혹한 흔적’
전쟁의 불꽃이 활화산으로 치달아가던 1951년부터 12년 전인 2005년까지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는 55년을 불의 몸으로 살아야 했어요. 그곳에 주한미군의 공군 사격장이 있었거든요. 쿠니사격장이라고.
섬이 타고 대지가 흔들리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삶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죠. 그곳은 그들의 삶터였으므로.
그 땅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곳이어서 매화 꽃 향기조차 피어 올릴 수 없었어요. 봄여름가을겨울이 수십 년을 돌아도 날마다 그곳은 겨울일 뿐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봄을 살았고 여름을 살았고 가을을 살았어요.
사람들은 뜨거워서 서로를 보듬었으나 전쟁을 끝낼 수 없었죠. 저항은 불가피했어요. 누군가는 전쟁을 끝내야 했으니까 말예요. 풍경은 폭격의 순간들은 물론이요, 사람들의 삶과 투쟁을 지켜보았어요. 2005년 결국 사격장은 폐쇄되었죠.
강용석 작가는 1999년에 그곳을 방문했고 사진을 찍었어요. 그의 사진은 폭격이 멈춘 뒤의 낡고 오래된 시간의 주검이에요. 1999년이니 한 쪽에서는 핏빛으로 꽝꽝 폭격을 해대고 있을 터인데, 다른 한쪽에서는 이렇듯 인류가 사라지고 없는 것 같은 텅 빈 참혹을 쌓고 있었죠.
시간의 주검이 즐비한 이 빈 참혹의 프레임은 그래서 한 줌 생명조차 찾을 수 없는 어두운 미래이거나, 참혹의 끝에서 새 생명이 시작되는 황홀한 순간들일지 몰라요. 어둠과 황홀이 겹치는 ‘녘’의 시간이 이 흑백임으로.
시선은 풍경에 기생하는 낡은 전쟁의 도구에 가 닿았네요. 사막을 건너지 못한 한 짐승의 시체가 모래바람에 흩어지듯이 포탄들도 갯벌에 몸을 처박고 부서지고 있잖아요. 그 몸은 불 화산으로 터져서 온갖 생명을 지옥불로 먹어 치웠을 테지만, 그 몸이 남긴 기념비는 작동되지 않는 녹슨 폭력일 따름일 거예요. 녹슨 폭력은 불도 전쟁도 파괴도 그 무엇도 아닐 테고.
그의 풍경은 상처이고 흔적이며 분단이고 충돌이에요. 그 풍경의 실체는 거짓 없이 매향리죠. 이 ‘매향리 풍경’이라는 주제어의 앞과 뒤에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치 않아요. 풍경에 박혀있는 것이 상처와 흔적과 분단과 충돌이니 매향리는 그것으로 우울한 진경일 따름이니까요.
그는 매향리의 어느 한 곳에 시선을 낮게 코 박고 조용히 응시했던 것 같아요. 프레임을 열어둔 시간은 그러므로 짧지 않을 것이고요.
낡은 것들은 영원성을 갖지 않아요. 낡음의 한계지점에서 파괴된 생명들의 불씨가 다시 싹을 틔울 거예요. 쇠가 흙이 되고 바다가 되는 시간은 우주의 찰나이나, 인간의 시간은 그 찰나가 슬픔이에요. 그는 찰나의 시간들이 소멸해 가는 과정을 엿보았죠. 검은 것들이 희고 물컹한 것들 속으로 내려앉는 장면들로 우주를 여는 것처럼.
이달 말부터 화성시 향토박물관에서 그의 사진들을 볼 수 있어요.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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