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국감무용론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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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 이후 첫 국정감사가 끝났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7대 국회 초선의원 시절에 이어 12년 만에 여당 법제사법위원으로 치른 국감이었다.

 

언론에서는 이번 국감을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의 프레임 전쟁이라 말하고 최전선을 법사위로 꼽았다. 여당은 국정농단으로 무너진 법치주의와 공직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외쳤고,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인권침해와 노무현 대통령의 비자금 재수사로 각을 세웠다.

 

국감을 통해 확인된 국기문란 실상은 심각했다. 검찰의 칼끝은 청와대 하명에 무뎌졌고, 거꾸로 ‘거악이 편히 잠들게’ 했다. 감사원의 마패와 유척도 수시보고 등 정치감사 논란 속에 장신구가 됐다. 법제처는 청와대 맞춤형 유권해석은 기본이고 법을 어기며 훈령개정도 해줬다. 군 검찰과 법원은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개입과 법원해킹 의혹 등으로 조롱당했다.

 

국회 법사위 소관 사정기관들은 법을 집행하고 공직부패를 감찰해야 할 책임이 있다. 준사법기관들의 행태가 이러한데, 타 부처 행정이 법률에 따라 운영되고 자체감사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을 리 만무하다.

 

흔히 지난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당대의 경험에서조차 교훈을 얻지 못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객관화 시키고 성찰하는 일은 수천 년 내려온 공맹의 가르침처럼 어려운 일이다.

 

꼭 1년 전 주말 저녁을 바치며 추운 광장에 촛불을 들고선 시민들의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부끄러운 지도자의 하야를 넘어,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공동체를 만들어달라는 주권자의 절박한 주문이었다. 구여권의 슬로건을 빌면 ‘국가대개조’, ‘비정상의 정상화’였다. 따라서 적폐청산이야말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을 위해 불가피한 과정인 것이다.

 

다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되지만 너무 여유를 부리다가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민생위기에 안보위기까지 겹친 엄중한 상황이다. 새 정부는 적폐청산과제를 빠르고 정확한 외과수술로 마무리해야 한다.

 

매년 국감 때면 맹탕 국감, 재탕 국감 등 국감무용론이 언급된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지방감사 반대 탄원서도 나오고 경제지 중심으로 기업인 대상 무더기 증인채택도 지적된다. 물론 필요 이상의 자료요구와 벌주기식 증인심문은 시정돼야 한다.

 

그러나 국정감사는 제도 자체로 비대화된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효과가 크다. 비록 제한된 감사기간과 질의시간 탓에 추궁을 못하더라도 자료제출과 시정요구만으로도 긴장과 주의를 환기시켜주기 때문이다.

 

특히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등 사법부에 대한 국정감사는 더욱 중요하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국민주권주의의 요체는 대의제와 권력분립이다. ‘견제와 균형’은 고대 로마의 혼합헌정에서 비롯돼 근대 서구의 법치주의 정신으로 이어져 온 원리이며, 통치자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방지하고 국민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그런 점에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 사법부에 대한 전반적인 견제수단은 국회 국정감사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야당의 헌재 국감 거부는 유감이다. 추석연휴를 반납하고 감사준비를 한 국회나 피감기관 관계자 모두 송구한 일이다.

 

시민단체들은 수박 겉핥기 국감이라고 비판한다. 변명일 수도 있으나 각 300명 국회의원에 소속된 인턴 포함 2천700명 보좌진이 국가공무원 63만, 지방공무원 37만, 공공기관 30만 등 행정부 130만 명이 집행하는 업무를 감사해야 한다.

수행과 총무, 지역담당 등을 제외하면 감사보좌진은 의원실별 4~5명에 지나지 않는다. 국정감사 기간 1개월 전부터 밤을 새울 수밖에 없다. 여의도의 가을 늦은 밤, 의원회관 모든 방들이 환하게 밝혀진 전경이 익숙한 이유다.

 

이제 국정감사 종료와 동시에 예산심사가 시작됐다. 정기국회는 예산국회다. 예산은 숫자로 표현된 정부의 정책의지다. 정부편성과정에서 소외된 지역현안예산들이 국회를 기다리고 있다.

 

정성호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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