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골프 또는 산책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조깅을 했다. 청와대 녹지원 트랙을 아홉 바퀴 돌았다. 한 바퀴가 265m니까 2천385m다. 나머지 두 바퀴는 걸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이날 조깅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조깅’이라는 주제까지 붙었다. 김 대통령이 “신선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일과로 조깅을 한다”고 했고, 클린턴은 “나는 20분씩 뛰는데 김 대통령이 30분씩 뛴다고 하니 그렇게 해보도록 노력하겠다”고 응대했다. ▶1993년 그때도 한ㆍ미 간에는 많은 현안이 있었다. 그 복잡함을 풀어낼 정상 회담에서 둘이 함께한 이벤트였다. 김 대통령은 민주산악회 시절부터 등산과 조깅으로 단련된 몸이다. 클린턴도 달리기를 좋아한 대통령으로 정평있다. ‘이벤트’를 함께 할 조건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언론도 이날 조깅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향후 국제 정세에서 함께 보폭을 맞추기로 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다. 신장 차이-김영삼 168㎝ㆍ클린턴 188㎝-가 큰 두 대통령의 보폭을 일일이 계산한 보도도 있었다. ▶일본 아베 총리의 트럼프 골프 접대가 인상 깊다. 프로골프 선수 마쓰야마 히데키까지 동반했다. 세계 랭킹 4위다. 트럼프가 좋아하는 햄버거도 간식으로 준비했다. 미국산 소고기로 패티를 만드는 정성을 보였다. ‘도널드&신조 동맹을 더욱 위대하게’라고 쓰인 골프 모자를 선물했다. 글씨는 금실로 새겼다고 전해졌다. 트럼프가 만족했던 모양이다. 트위터에 ‘아베 총리와 마쓰야마 히데키와 골프를 치고 있다. 멋진 두 사람!’이라는 글을 남겼다. ▶적지 않은 누리꾼들이 관심을 보였다. 골프를 안 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걱정하는 글도 있다. 문 대통령은 산책을 택했다. 7일 정상회담을 갖고 ‘친교 산책’을 함께 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나름의 이벤트다. 산책은 문 대통령 식 정치다. 대통령 취임 이틀째인 5월11일 눈길을 끄는 사진이 보도됐다. 청와대 참모들과 테이크 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산책하며 담소하는 모습이다. 이후에도 영부인과 함께 걸어서 출근하는 모습,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산책하는 모습 등이 보도됐다. ▶조깅을 못하거나 싫어하는 정상은 있다. 골프를 못하거나 싫어하는 정상도 있다. 하지만, 산책은 못하는 정상도 싫어할 정상도 없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차피 국민이 관심 두는 건 대통령들이 하는 이벤트 종목이 아니다. 그 이벤트에서 챙겨내는 국가를 위한 결과물이다. 골프면 어떻고 산책이면 어떤가.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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