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은 친구다. 30년 전 전 뉴질랜드로 갔다. 십수 년 전부터는 호주시민이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옆 호텔이 직장이다. 아들 둘이 호주 유명 대학교 법대생이다. 젊은 시절 고생 덕에 생긴 여유다. 이제는 가끔 한국에 들른다. 9월 중순에도 왔었다. 국내외적으로 한참 전쟁 위기설이 돌 때였다. 호주 친구들이 걱정해 준다고 했다. ‘걱정 안 한다’고 하면 그네들이 되레 이상하게 본다고 했다. ‘군 출신-병장-이라 그러냐’는 소리도 듣는다고 했다. ▶그런 한국인 N조차 기죽게(?) 하는 친구가 있다고 한다. 레바논에서 온 이주자란다. 가족들이 모두 레바논에 있다고 한다. 레바논은 중동의 화약고다. 인접한 사우디, 이란, 바레인조차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할 정도다. 그런데 정작 ‘바레인 친구’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N이 말했다. “호주인들이 보기엔 한국인인 내가 무사태평이라겠지만, 내가 보기엔 바레인 친구가 진짜 강적이야.” 호주인, 한국인, 레바논인이 느끼는 전쟁의 체감 공포가 그렇게 다르다. ▶‘수능 핑계’는 언제나 있었다. 문제가 쉬우면 ‘물 수능’이라 핑계 댔다. 어려우면 ‘불 수능’ 핑계였다. 날이 추우면 ‘입시 추위’로, 더우면 ‘집중력 저하’로 핑계 댔다. 그런데 올해는 차원이 다르다. 핑계를 넘어서 공포다. 지진으로 수능이 일주일 연기됐다. 여진이 이어지며 여전히 불안하다. 아직은 말들이 없다. 내일이면 터져 나올 것이다. ‘컨디션 난조’ ‘리듬 파괴’라는 핑계가 폭주할 것이다. 수능을 연기한 정부 결정에도 원성이 쏟아질 것이다. ▶오늘쯤 이런 훈계를 하는 부모들이 있을지 모른다. ‘일본 수험생들은 지진 따위엔 눈도 끔뻑 않는다. 그러니 핑계 댈 생각 마라’. 해서는 안 될 말이다. 한국은 지진이 없는 나라다. 일본은 지진이 많은 나라다. 진도 6 이상 강진의 20.8%가 일본에서 발생한다. 한국인의 지진 체감 공포와 일본인의 그것이 같을 수 없다. 하물며 안 그래도 떨고 있을 수험생들이다. 난데없이 연기된 일주일이 이미 공포와 불안의 시간이었다. ▶일본은 지진으로 시험을 치르지 못한 학생만 골라 다시 치른다. 그 일정이 예비로 잡혀 있다. 재시험 문제 출제를 위한 문제은행식 시스템도 완벽하다. 우리가 배웠어야 할 지진 대책이다. 올해는 이미 늦었다. 이대로 치를 수밖에 없다. 교육부 장관도 ‘더 이상 연기는 없다’고 못 박았다. ‘지진 걱정 마라’는 훈계가 아니라, ‘지진 걱정 안 해도 될’ 제도가 필요했었는데…. 수험생들-특히 포항지역-에게 어른들이 죄스러운 올 수능이다.
김종구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