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국시 한 그릇

▲ 김상헌
▲ 김상헌
북쪽의 눈 쌓인 나라를 다녀왔다. 학술대회를 핑계로 이런저런 곳을 다녀올 기회가 많다는 건 교수라는 직업의 분명한 장점이다. 

 

바로 가는 교통편이 없어서 중앙아시아의 한 도시를 거쳐 가야 하는데 겨울로 접어들면서 일주일에 두 번만 직항편이 있다. 여기서 최종목적지까지는 또 하루에 한 번 있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하루를 꼬박 경유지에서 머물러야 한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이다. 

 

지난여름 유라시아열차탐방단이 지난 곳이고, 아스타나 엑스포로 뜨거운 여름을 더욱 뜨겁게 보낸 곳인데, 10월의 초입부터 이미 영하였고, 11월 중순은 이미 눈이 잔뜩 쌓여 있다. 아시안 게임과 엑스포를 치르면서 가장 체감하는 변화는 공항이다. 10여 년 전 처음 카자흐스탄을 왔을 때는 비행기에서 내리면 세관과 입국심사대 앞에 선 줄이 언제 줄어들지 몰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무작정 기다려야 했지만 요즘은 환승 시간에 잠시 저녁먹기 위해 나가는 것을 망설이지 않을 정도로 통관 수속이 빨라졌다. 물론 그 사이에 우리나라와 카자흐스탄 사이에 비자가 없이 왕래할 수 있게 된 영향도 크다. 

 

공항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20여 분 달리면 시내의 모습이 보인다.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카자흐스탄은 독립 후 수도를 지금의 아스타나로 옮긴다.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계획도시로 만들어진 아스타나의 모습은 엑스포를 하면서 도시의 모습을 제법 갖추면서 중앙아시아는 물론 유라시아의 중심국가임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고려사람이 운영하는 한식당에 들러 국시 한 그릇을 시킨다. 국수가 이곳의 식재료와 이곳의 방식으로 바뀐 음식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한 그릇 국물과 함께 들이키면 속이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이다. 

 

2017년은 고려사람이 이 땅에 머무르기 시작한 지 80년이 되는 해이다. 1937년 가을 소비에트의 명령에 의해 극동에서 출발한 고려사람들은 그해 늦가을에 중앙아시아 지역에 도착한다. 카자흐스탄은 물론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등 중앙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게 된다. 이곳은 10월이면 이미 겨울이 시작된다. 모진 겨울을 꿋꿋하게 버텨내고 그다음 봄부터 농사를 시작해서 이곳에서 뿌리 내리고 80년을 지낸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나라마다 경제 사정이 다르듯이 나라별로 고려사람의 살림살이도 천양지차인 거다. 카자흐스탄은 그 중 경제적,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나라이다. 고려사람들의 살림살이도 가장 나은 편이다. 정치적으로도 국회의원을 여러 명 배출하고 있고, 상당한 규모의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가도 여럿 있다. 특히 젊은 층의 경제적인 활동은 카자흐스탄 경제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고려사람의 영주귀국 문제로 많은 고민이 있다. 국내의 매스컴을 통해 전해진 안타까운 사연들은 당연히 같은 민족으로 보듬어야 할 일이지만, 그들이 고려사람의 사정을 모두 대표하는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다. 불우한 이웃이 아니라,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다시 닿은 먼 친척이라고 생각하자. 감성적인 일회용 보살핌이 아니라 꾸준히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지속적인 관계를 맺음이 더욱 중요한 시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매년 시월이면 안산에서 고려인 축제가 열린다. 영구 귀국한 고려사람들이 안산 고려인 마을에 모여 살고 있다. 막연히 먼 이웃이라 생각하지 말고 한 번쯤 방문해서 국시 한 그릇 맛보면서 차이를 찾아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면 좋겠다.

김상헌 상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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