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이 내년 1월부터 근로시간을 단축해 주 35시간 근무제로 전환한다고 8일 밝혔다. 주 35시간 근무는 유럽 및 해외 선진기업에서나 볼 수 있는 근무형태로, 국내 대기업에는 처음 도입된다. 주 35시간 근로제가 시행되면 신세계 임직원은 하루 7시간을 근무하게 된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9-to-5’가 실현되는 것이다.
장시간 근로, 과로 사회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근로문화를 획기적으로 혁신해 임직원들에게 ‘휴식이 있는 삶’과, ‘일과 삶의 균형’을 과감히 제공, 쉴 때는 제대로 쉬고 일할 때는 더 집중력을 갖고 일하는 기업문화를 만들겠다고 신세계는 설명했다. 근로시간이 단축되지만, 임금 하락은 없다.
신세계의 파격 발표에 유통업계는 환영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국내 유통업계 현실을 감안할 때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 정부 정책 기조에 코드를 맞추기 위한 것 아니냐고 보는 시선도 있다.
우리나라의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다. 휴일근로까지 포함한 법정 최대 근로시간은 주 68시간이다. 우리의 연간 근로시간은 지난해 기준 2천69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300시간 이상 초과해 중하위권인 31위에 머물고 있다. 정부는 OECD 선진국 수준인 1천800시간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1주일에 최장 52시간 근로만 허용하자’는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재계에선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라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근로시간이 줄어도 생산 수준을 유지하려면 추가 고용이 필요하고, ‘주 52시간 근로’ 취지에 따라 휴일근로에 더 많은 수당을 줘야 해 기업 입장에선 추가비용 부담이 불가피하다. 특히 제조업과 중소기업에 이 추가비용의 70%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돼 해당 업체들은 ‘초긴장’ 상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근로시간 단축의 비용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주 최장 근로 52시간 제한’ 규정이 실행된 뒤 기업이 현재 생산량 유지를 위해 추가 부담하는 비용은 연간 12조3천억원에 이른다. 지금도 구인난을 겪는 중소기업은 ‘비용추가 부담’과 ‘인력확충 어려움’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다. 때문에 획일적 근로시간 조정을 강행하기 보다 업종ㆍ규모로 나눠 단계적으로 시행하거나 개별 기업 노사가 근로시간 합의에 따라 결정할 수 있게 재량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삼성이 시도했다 여러 부작용에 흐지부지된 ‘7·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제도 도입에 그칠 게 아니라 전반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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