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베트남을 찾는 한국인이라면 그런 과거를 한 번쯤은 되씹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우리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있으며 그들도 우리에게 매우 우호적이라는 사실. 얼핏 이해하기 힘들지만 두 나라 정부도 그렇고 국민들도 매우 선의적이다.
거의 하루에 1개의 한국공장이 베트남에 들어서고 있다고 할 만큼 우리 기업의 진출이 활발하고, 한국에 시집 온 베트남 여성은 4만2천명을 넘는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거리에는 한국 자동차가 즐비하다. 택시와 버스는 거의가 한국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는 코리아 타운이 생겨날 정도로 백화점과 슈퍼 어디든 한국 상품이 눈에 띄게 많을 뿐 아니라 한국 음식점이 성업을 이루는 걸 보면 친근감이 든다. 특히 한국 특유의 칼국숫집, 설렁탕, 해장국, 떡볶이까지 등장했으니 어쩌면 베트남이 우리와 전쟁을 했다는 생각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 내가 하노이에서 만난 베트남 대학생은 “우리가 과거의 덫에서 발이 묶이면 미래를 잃습니다. 미래가 더 소중하죠”라고 말했다. 그렇다. 그들은 ‘미래’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고, 미래를 위해 한국과의 동반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 것이다. 정말 그들은 과거 전쟁의 상처를 벗어나 미래를 위해 뜨겁게 달리고 있다.
이번에 하노이에 갔을 때 불과 5년 전의 하노이는 아니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지금도 거리에는 오토바이가 강물처럼 넘치지만 5년 전과는 눈에 띄게 그 숫자가 줄고, 그 대신 자동차, 특히 승용차가 부쩍 늘었다.
가는데마다 고층 빌딩 신축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공항과 항구에는 수출물량을 적재한 컨테이너가 빼곡히 쌓여있다. 하노이에서 세계적 관광지 하롱베이로 가는 길 양쪽에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벽돌공장, 레미콘공장 등 건설자재를 생산하는 시설이다. 전에는 이런 것은 보기 힘든 것이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베트남의 석유자원이다. 아시아 6대 석유생산국인 베트남은 매장량이 47억t으로 미래 베트남 경제의 원동력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밖에도 주요 지하자원 광산을 5천개나 갖고 있는 자원부국. 그래서 10년 전 1인당 국민소득이 715달러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천164달러로 3배가 불어났는데 이처럼 빠른 성장은 석유 같은 자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언젠가 베트남이 한국을 추월해 오는 강력한 라이벌이 될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 근거로 앞에 말한 자원 외에 국민의 60%가 30대 젊은이들이라는 것을 꼽는다.
베트남은 전쟁 후 일어난 ‘베이비붐’에 더불어 인구증가책을 강력히 추진했기 때문에 7천만 베트남 인구의 두꺼운 벽을 젊은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우리나라가 인구감소, 특히 젊은이의 벽이 자꾸만 얇아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마지막으로 그들도 한국인처럼 부지런한 국민성과 억척스럽게 일에 매달리는 근성을 꼽는다. 그 근성 때문에 몽고침략을 물리쳤고 프랑스도 이겼으며 최근에는 미국도 이겼다는 것이다. 이 근성과 자원이 무섭게 돌진하면 언젠가 한국도 추월할 수 있다는 가설.
어쩌면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될지 모른다. 정말 우리는 지금 토끼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