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 평가·마케팅 이유로 강요
같은 시험실 ‘부정행위’ 가능성
애꿎은 학생만 등급 피해 우려
경기지역 A 기숙학원 학원강사라고 소개한 이 남성은 수화기 너머 짜증 섞인 말투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토로했다. 그는 “학원장이 올해 수능에 응시해 시험을 봐야 한다고 채근했다”면서 “학원이 강사평가 등을 이유로 강사에게 의무적으로 수능에 응시하게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수능에서 등급이 하나라도 낮게 나오면 강사 경력에 타격은 물론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있어 부담감으로 작용한다”면서 “일부 학원들의 이 같은 비상식적인 행태는 대학입시를 목표로 달려온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당시 해당 강사와 전화통화를 한 도교육청 관계자는 수십여 분 동안 그의 억울함(?)을 들어줘야만 했다.
경기도내 일부 기숙학원들이 재수생들에게 ‘제2외국어 과목’ 선택을 종용(본보 20일자 1면)한 가운데 이들 학원들이 강사평가와 마케팅을 이유로 강사들을 대상으로 수능 응시를 강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수능에서 높은 등급을 받은 수능강사들에 밀려 대학입시를 목표로 시험을 치르는 재학생들만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도교육청에 따르면 용인과 광주·하남, 이천지역 소재 기숙학원에는 약 250명(언어·수학·외국어, 추산)의 학원강사가 활동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강사평가와 마케팅을 이유로 의무적으로 수능시험에 응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용인 B 기숙학원 관계자는 “일부 학원에서 강사의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수능에 응시하고 있다”며 “서울과 비교해 기숙학원에서 근무하는 강사의 역량이 낮다는 인식과 자신을 알리기 위한 전략으로 수능을 치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이같이 학원강사가 수능에 응시할 경우 부정행위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수능등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광명·하남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재학생과 동일한 시험실에서 수능을 치르는 이들이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부정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등급에 따라 대학 진학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강사들에게 밀려 등급이 떨어질 경우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어 이와 관련된 규제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수능이 치러진 지난달 23일 용인의 한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던 학원강사가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가 학생들의 신고로 적발됐다. 용인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수능을 보는 재학생과 다른 목적으로 학원강사 등이 시험을 치르고 있어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는 “수능 응시자격을 따로 제안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기숙학원 강사가 상위 등급에 포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등으로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규태·정민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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