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는 늘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인명 피해는 천차만별이다. 제천 스포츠 센터 화재는 29명이 숨졌다. 화재 내용에 비해 피해 규모가 참담하다. 그 원인을 두고 말들이 많다. 지금까지 확인된 원인 중 소방 활동 관련 요소는 이렇다. 소방장비의 현장 접근이 늦었다. 꽉 막힌 도로 때문이다. 소방관의 건물 진입이 늦었다. 유리창 등 파괴 작업이 늦었다. 소방장비가 부족했다. 일부 장비가 고장 나거나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해결할 법안들이 모조리 국회에 있었다. 조응천 의원이 ‘소방차 진입을 위한 개정안’을 제출해놨다.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 주택에 소방차 전용 주차 구역을 의무화하는 법안이다. 소병훈 의원은 ‘소방관의 긴급 파괴권을 위한 개정안’을 제출했다. 소방 활동을 위해 소방관이 행한 파괴의 책임을 국가나 지자체가 지는 법안이다. 김성원 의원은 ‘소방 장비 구입을 국가가 지원토록 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제천 화재 현장에서 제기된 문제점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법안들이다. 법안이 통과됐으면 29명의 피해를 모두 막을 수 있었다고 추론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참사에서 제기된 문제의 법률적 한계만큼은 해소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런 법안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지연되고 있었다. 딱히 처리를 미뤄야 할 납득할만한 연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구석에 처박혀 버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당 김현 대변인이 23일 논평했다. “억울한 희생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데 그 책임을 다해 나가겠다.” 한국당 신보라 대변인은 24일 논평했다. “법적 미비사항을 보완해 이 같은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근본적 방안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두 논평이 나올 때까지 국민은 몰랐다. 이번 참사의 원인을 막을 개정안들이 국회에서 묵혀 있는지 뒤늦게 알려졌다. 돌이켜 보면 참 뻔뻔한 논평이다.
소방행위는 긴급행위다. 통상의 행정행위와는 다르다. 주차된 차를 부수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화재 건물을 무너뜨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소방차 주차 공간 확보는 건축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법적 근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조응천ㆍ소병훈ㆍ김성원 의원의 법안이 개탄스러운 것이다. 유족 찾아가 무릎 꿇는 모습 연출할 때가 아니다. 29명의 희생자 가운데 최소한 몇 명은 살릴 수 있었다는 참담한 반성을 정치인 스스로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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