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저 임금 인상 핑계로 새해 물가 폭등 조짐 / 고용주 아닌 서민이 임금 채워 주는 꼴이다

설렁탕, 부대찌개, 햄버거… 5~15% 폭등
업계 “최저임금 인상 때문” 노골적 핑계
정부가 안정시켜야… 직접 개입도 필요

전태일 열사가 대통령에게 부치려 한 편지가 있었다. 근무여건 개선, 근무 시간 단축, 직업병 진료 등 다양한 건의가 포함돼 있다. 그 가운데 ‘최소한의 임금 기준’도 있다. “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하루 15시간 일하고 한 달에 1만원 받던 시절이었다. 그 후 오랫동안 최저 임금은 그런 개념으로 통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하한선으로 여겨졌다.

이제는 아니다. 최저 임금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직장인에게 적용되는 개념이다. 최저 생계유지 비용이 아니라 보편적 삶의 기본을 유지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고용주로부터 노동자의 권익을 지켜내는 법적 장치의 하나가 됐다. 갑(甲)인 고용주와 을(乙)인 노동자의 사회적 균형을 잡아주는 사회보장적 성격이 짙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16.4%로 대폭 인상한 것도 그래서다. 노동자의 기본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주가 감당할 희생을 강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 효과가 엉뚱하게 서민에게 튀고 있다. 서민 물가가 치솟고 있다. 패스트푸드 업체 KFC는 12월부터 치킨, 햄버거 등 24개 품목 가격을 5.9% 인상했다. 롯데리아도 비슷한 시기에 햄버거 가격을 5.8% 올렸다. 신선설농탕 설렁탕은 7천원에서 8천원으로 올랐다. 14.3%다. 놀부부대찌개도 부대찌개 가격을 7천500원에서 7천900원으로 5.3% 올렸다. 직장인들이 찾는 햄버거, 설렁탕, 부대찌개다. 이런 서민 음식가격들만 일제히 올랐다. 그것도 예를 찾기 힘든 인상 폭이다.

업계가 내놓는 인상요인은 최저임금이다. 새해부터 7천530원으로 대폭 오른 최저 임금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기존에도 임차료, 재료비 등 물가 상승 요인이 있었지만 자제해왔다고 덧붙인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더 버티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최저임금을 핑계로 음식값을 올리려 하는 것 아니냐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업계에 가격 인상의 당당한 빌미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서민 주머니를 털 수밖에 없다는 얄팍한 셈법이다.

이러려고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시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정부는 임금 올려 노동자 인기 얻고, 고용주는 가격 올려 서민 주머니 털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고 있다. 사흘도 안 지난 새해 벽두부터 현실이 되고 있다. 대책을 내야 하는 것 아닌가. 고용안정자금 지원책의 허점을 보완하는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하다면, 우선 시장 가격에 정부가 개입하는 한시적 강경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번 오른 물가는 뒤로 가지 않는다. 그래서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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