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섭 칼럼] ‘58년 개띠’를 위하여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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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 해/오월 오일에 태어났다, 나는// (중략)// 마을 어르신들/너는 좋은 날 태어났으니/잘 살 거라고 ‘출세’할 거라고 했다// 말이 씨가 되어/나는 지금 출세하여/잘 살고 있다.// 이 세상 황금을 다 준다 해도/맞바꿀 수 없는 노동자가 되어/땀흘리며 살고 있다.// 갑근세 주민세 한 푼 깎거나/날짜 하루 어긴 일 없고/공짜 술 얻어 먹거나/돈 떼어 먹은 일 한 번 없고//(후략) //

 

58년생 서정홍 시인의 ‘58년 개띠’란 시다. 2003년에 쓰여졌다.

‘58년 개띠’란 무용작품도 있다. 전미숙씨가 1993년 안무한 현대무용이다. 1950년대에 태어나 세상사에 순응해 살며 자아를 상실한 인간상을 그린 것으로, 기계적 일상과 사회적 강요에 시달리는 삶에 주목하고 있다. 개인의 정체성이나 욕구는 무시된 채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쉼없이 줄넘기를 하는 남자의 모습으로 그렸다.

 

‘58년 개띠’는 유명하다. 개띠 하면, 58년 개띠가 그냥, 자연스레 떠오른다. ‘58년 개띠’는 어느새 고유명사가 됐다.

2018년 무술년(戊戌年)이 황금개띠 해라며, 58년 개띠 얘기를 많이 한다. 1958년 무술년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환갑을 맞았다. 서정홍 시인의 시처럼 58년 개띠는 지금 ‘출세해’ 잘 살고 있을까? 두 작품 모두에서 보듯, 58년 개띠의 삶은 녹록지 않다.

 

60년 전 첫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태어난 58년 개띠들은 새해, 일선에서 전면 퇴진한다. 민간기업에서 일했던 동갑내기들은 벌써 물러났지만 정년 60세가 지켜지고 있는 공직사회나 일부 기업의 개띠들까지 이번에 모두 퇴장한다. 그들이 태어난 무술년에 일선에서 전면 사라진다니 아이러니다.

57년 닭띠, 59년 돼지띠도 아니고, 왜 58년 개띠인가? 58년 개띠는 고달픈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를 고비고비 힘겹게 넘으며 살아온 의미있는 세대다.

 

이들은 한국전쟁의 상처가 수습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베이비붐의 절정에 태어났다. 출생자 수가 90만 명대로 급증해 60∼70명이 바글거리는 콩나물시루 같은 초등학교에서 2부제 수업을 받았고, 고교 평준화가 시행돼 시험없이 ‘뺑뺑이(추첨)’로 고등학교에 처음 진학했다.

대학(77학번)에 들어가는 데도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힘겹게 들어간 대학에선 긴급조치와 10·26을 지켜보며 유신정권이 몰락하고 제5공화국 탄생이라는 정치적 격변기를 경험했다. 20대 초반 누구는 군인 신분으로, 누구는 시위대로 광주민주항쟁을 겪었다.

 

한국 나이로 30세가 된 1987년 6월엔 ‘넥타이 부대’로 민주화에 기여했지만 40세가 된 1997년엔 외환위기가 닥쳐 명예퇴직과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았다.

물론 경제성장의 혜택도 가장 많이 누렸다. 급속한 경제성장 덕분에 지금처럼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고 중산층 진입에 성공했고 내집 마련의 꿈도 이뤘다. 58년 개띠의 노고가 없었다면 올해 3만달러 시대를 여는 한국 경제의 성공 스토리는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궁핍했던 ‘보릿고개’를 극복했고 ‘한강의 기적’을 견인한 주역으로 영욕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었던 58년생의 전면 은퇴는 우리 사회 전반의 세대교체를 시사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을 살아갈 58년 개띠는 76만4천여 명이다. 대규모 은퇴 인구집단인 58년 개띠는 은퇴 이후의 삶도 주목받고 있다. 인생 2막에서 어떤 삶을 설계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가 우리 사회 중요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에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변화를 이끄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58년 개띠가 행복해야 ‘100세 시대’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는 우리 사회도 행복할 수 있다. 58년 개띠에게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다. 수고 많았다고, 앞으로 인생 2막도 멋지게 잘 살아달라고.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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