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장 사고 막으려 시작한 건설안전교육 / 형식적, 일회성으로 안전도 더 위협한다

졸고 딴 짓 해도 주는 교육 이수증
외국인 근로자에게 한국어로 교육
잘못된 제도, 고치거나 폐지해야

본보 취재진이 교육현장을 직접 찾았다.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현장이었다. 10여 명의 건설 근로자들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한 마디로 하나마나한 교육이었다. 몇 수강생은 수업 시간 내내 졸았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수강생도 있었다. 강의도 형식적이었다. 건설 현장에 비치되는 위험 표지판 설명도 없었다. 진열해 놓은 안전장비도 대충 소개하고 끝냈다. 때마침 중국인 교육생이 있었다. 그런데 강의는 한국어로만 진행됐다.

이렇게 4시간의 교육이 끝났다. 그리고 교육생 전원에게 교육 이수증이 교부됐다. 건설 현장의 안전 자격을 보증한다는 증표다. 2012년부터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이 제도를 도입했다. 건설 현장의 안전 교육을 기업 자율에서 공적 의무로 끌어올린다는 취지였다. 현장을 이동할 때마다 받던 교육을 일괄적으로 받게 한다는 취지도 있었다. 취약계층 등에게는 무료교육도 진행한다. 여기에 들어간 예산만 지난해 22억여 원이었다.

이날 이수증을 받은 교육생이 말했다. ‘안전대를 어떻게 착용하는지도 모르겠다.’ 교육의 실상을 단적으로 설명해준 한 마디다. 도대체 무슨 안전 교육이 이런가. 교육생은 그저 앉아 있다가 돌아갔다. 강사는 주어진 시간만 채우고 끝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측이 이런 실상을 모를 리 없다. 본보가 취재 내용을 설명하자 교육 내용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외국인용 교재를 만들겠다고 했고, 교육장 점검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여태껏 뭐하다가 이제와서.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듯싶다. 도입 취지부터 문제가 있어 보인다. ‘현장을 이동할 때마다 받아야 하는 교육을 대체해서 건설업 차원으로 등록된 기관에서 기초적인 안전 지식을 교육받게 한다’는 것이 과연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모든 현장에서 받던 교육을 지정된 교육장에서 받도록 간소화했다. 현장에서 반복되던 수업시간을 4시간으로 축소했다. 안전 교육 강화가 아니라 안전 교육 간소화에 가깝다. 잘못 끼워진 단추다.

안전은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국정 과제다. 그런데 자고 나면 사고다. 그때마다 정부가 비상 대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사고는 줄지 않는다. 정부 의지가 부족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정부 의지와 현장 행정이 따로 노는 것도 원인일 것이다. 이번 본보 취재에서 그 극단의 예를 본다. 취지부터 애매한 정책, 집행 현장도 무책임하며 형식적이고, 안전 의식은 되레 뒤로 가고, 여기에 수십억원의 혈세만 쏟아붓고 있는 정책. 고치거나 폐지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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