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억 속에 있는 태곳적 자연재해의 대표적인 것은 대홍수다. 대홍수 이야기는 성경뿐만 아니라 바빌론이나 그리스의 신화에도 등장한다. 이들 신화에서 보여주는 대홍수의 동기는 우주에서의 불균형이다. 땅에 인구가 넘쳐난 것이다. 땅에 넘쳐나는 인간의 소음이 신들의 잠을 방해하였고, 화가 난 신들은 인간을 파멸시키기로 작정하고 처음에는 여러 가지 재앙과 기근으로 하다가 마지막에는 대홍수로 하였다.
바빌론 신화에서 보면 땅에서 넘쳐나는 인구를 막기 위하여 신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신들은 여인들이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하고, 아기들을 빼앗아가는 악마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인간의 수명을 제한하였다.
그리스의 호머(Homeric)와 헤시오딕(Hesiodic) 전통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신화적인 동기는 반신반인의 등장이다. 여기서의 불균형은 인간존재의 혼합, 즉 반신반인으로 인한 것이다. 제우스는 반신반인의 영웅들을 죽이기 위해 트로이 전쟁을 일으켰고, 그렇게 함으로써 신과 인간 사이에 구별된 영역이 적절하게 보장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이러한 고대 신화의 이야기들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너무나 유사하다. 그 신화적 내용을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인간의 번성은 인구과잉이라는 사회적경제적 문제고, 반신반인의 등장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생명을 연장하려는 과학적윤리적 문제다. 인간은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데, 최근에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개발과 줄기세포 연구 등이 대표적이다.
고대의 신화가 현대의 과학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세계를 과학이 대변하듯 신화는 고대의 사회가 공유하고 있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신화는 결코 원시적인 것이 아니다. 고대인들이 자연재해나 전쟁의 비극을 경험하면서 신화적으로 인간은 무엇인가를 고민하였던 것처럼 오늘날 가상현실, 인공지능, 줄기세포 등을 통해 끊임없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도 결국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 우리는 어디까지가 가상이고 실제인지,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기계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소위 반신반인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은 빅 데이터(Big Data)를 통해 물리적, 생물학적, 디지털적 세계를 통합시켜 개개인의 성향까지 파악해 냄으로써 이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 그러나 할 수 있다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과 인간의 경계를 둔 종교처럼, 선과 악의 분별을 둔 윤리처럼 인간은 분명 지켜야 할 경계선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임봉대 인천시 박물관협의회 회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