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소화기 위치 확인 또 확인… 환자·보호자 잠못든다
“똑같이 불이 나도 지역병원과 서울 대형병원의 피해가 다른 걸 보니 병원을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5일 수원의 한 병원에서 만난 L씨(69ㆍ여)는 이틀간 밤잠을 설쳤다. 최근 밀양 세종병원의 화재를 접하며 남편이 입원하고 있는 병원에도 혹시나 화재 등 사고가 날까 봐 걱정이 커진 것. 특히 L씨의 남편인 Y씨(71)는 왼쪽 무릎 관절 수술을 받아 움직임이 불편한 상태여서, 불이라도 나면 혼자 힘으로는 제대로 대피하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L씨는 “병원에 발생하는 화재 소식을 잇따라 접하면서 남편 걱정으로 제대로 잠이 든 적이 없다”라며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는 불이 나도 인명피해가 없었단 소식에 서울 소재의 대형병원으로 입원실을 옮길까 하는 고민까지 든다”고 말했다.
이날 권선구의 한 병원에서 만난 K씨(54)도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K씨는 지난 1월29일 계단에서 미끄러져 오른쪽 발목이 부러졌다. 큰 부상 탓에 입원치료를 받는 K씨는 비상탈출구와 대피로를 머릿속으로 숙지하는 것은 물론 소화기의 위치까지 꿰고 있다. 혹시 모를 화재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K씨는 “다리가 골절된 탓에 불안감이 더 크다”며 “이상하게 요즘 병원화재가 많아 안절부절못할 때가 잦다”고 했다.
최근 병원에서 연일 발생하는 화재로 입원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서 ‘병원 포비아(공포증)’가 스멀스멀 퍼지고 있다. 특히 지역병원에서 발생한 화재에 대형인명피해가 발생한 이후 지역병원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병원에서도 화재 대비에 동분서주하는 모습이었다. 수원 S병원의 경우 직원 대상으로 소화기 사용법 교육은 물론 환자 개인의 전열기구 사용을 일체 금지했다. 게다가 이전에는 직원들이 퇴근하면 컴퓨터 전원만 끄고 갔지만 잇따르는 병원 화재사고 이후에는 꼭 필요한 기계를 제외하고 전선 코드까지 뽑는 방침까지 시행 중이다.
S병원 관계자는 “연일 계속되는 병원 화재 이후 민감하고 빠르게 화재 대응을 하고 있다”며 “미리 사고를 방지하고자 직원과 환자들에게 대피 요령 교육은 물론 병실을 돌면서 화재 위험성을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M요양병원 등 도내 상당수 병원도 마찬가지로 개인전열기구 사용을 금지하는 등 자구책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환자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서는 의료 기관이 환자에게 신뢰성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상화 마음톡심리상담센터장은 “환자들이 화재 소식을 접하는 빈도가 잦을수록 불안감이 높아진다”며 “의료 기관에서는 환자들의 생명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 유지를 돕기 위해 화재 발생 시 대처 방안에 대한 정보를 환자들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혜숙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도 “환자들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병원 측이 확실한 안전 정보를 알려주는 교육 등을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승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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