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또 산태미를 세워 놓으면 죽어라 도망갔던 참새들이 다시 모인다. 제 목숨을 앗아갈 산태미인데, 그리고 그 위기를 겪었는데도 참새들은 다시 모인다. 어린 나이였지만 참새들의 그 건망증이 참 이상스럽게 느껴졌다. 참새의 기억력은 3초만 지나면 망각된다는 속설이 사실일까?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참새보다 망둥이(망둥어)가 더 건망증이 심하다고 말한다. 망둥어를 낚시할 때 놓치는 경우가 많다. 낚시의 미끼를 물었다가 몸부림쳐 살아 도망친 망둥이지만 다시 낚시를 던지면 입에 피를 흘리면서 또 미끼를 문다는 것이다. 참으로 지독한 건망증이다.
그러면 인간의 기억력은 얼마나 될까? 독일의 실험 심리학자로 유명한 헤르만 에빙하우스에 의하면 인간 역시 ‘망각의 동물’인 것 같다. 그에 의하면 학습으로 얻어진 100%의 정보량이 1시간에 50% 망각되기 시작하여 9시간 안에 급격히 망각되다가 하루 70%, 한 달 80% 등 망각곡선이 서서히 내려간다고 한다. 이것마저 완전히 무너지면 치매 현상이 나타난다.
얼마 전 한 대학교수가 쓴 글이 생각난다. 시골에 계신 노모를 찾아뵈러 가면 처음에는 얼른 알아보고 “우리 아들 왔구나!”하고 반가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아들에게 “누구세요?”하며 딴 소리를 하는 바람에 억장이 무너져 왈칵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는 것. 물론 우리가 모든 것을 잊지 않고 생생히 기억한다면 이 또한 비극일 것이다. 적당한 망각은 오히려 정신건강에도 좋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너무 빨리 뜨거워지고 너무 빨리 식어버리는 소위 ‘냄비 기질’ 때문에 망각 증세가 심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가령 호주 오픈 남자 단식 테니스대회에서 정현 선수가 한국 최초의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 국민들을 열광케 했는데 밀양 세종병원 화재참사사건이 발생하자 순식간에 그 열기가 뒤로 밀렸다.
이렇듯 집단망각에는 으레 대형사건의 충격이 촉매 역할을 한다. 지난 12월 인천 영흥도 낚싯배 침몰사고로 15명이 사망하자 모두들 경악했다. 그러면서 인재(人災)에 의한 안전 불감증을 개탄했는데 며칠도 못 가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의 희생자가 나자 영흥도 낚싯배 사고는 기억의 뒤로 밀려났고, 다시 밀양 세종병원 화재가 발생하니 우리의 망각증은 쓰나미 현상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안전 불감증’이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건 후 제대로 시설을 점검하고 경각심을 가졌더라면 밀양 세종병원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밀양 화재사건 이후에도 계속 비슷한 이유로 크고 작은 화재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화재사건 뿐이겠는가. 모든 면에서 우리는 참새가 되고 망둥이가 되고 있지 않은가.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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