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산하 조선독립당 활동 일제 공장서 고된 노동하며 독립자금 모금하다 체포돼 옥고
부평역사박물관 기획특별전 ‘삼릉 멈춰버린 시간’ 통해 항일투쟁의 삶 세상에 알려져
미쓰비시 줄사택은 1938년 일제가 일본군 군수물자 보급 공장인 육군 조병창을 부평에 세울 무렵 지어진 공장 노동자 합숙소다. 일본 히로나카상공(弘中商工)이 사용하다 재정난으로 1942년 미쓰비시 중공업에 공장과 합숙소를 넘겼다.
일제강점기때 부평 히로나카상공에서 일을 하며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일본 경찰에게 발각돼 옥고를 치룬 인천출신 독립투사가 뒤늦게 재조명을 받고 있다. 바로 고(故) 이연형 선생이다.
1921년 인천에서 태어나 1941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의 조선독립당에 가입, 인천에서 독립운동 참여를 권고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된 이연형 선생의 독립운동 이야기는 지난해초 부평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삼릉 멈춰버린 시간’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통해 알려졌다. 안타깝게도 전시회 이전까지 부평에서조차 이연형 선생을 아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부평 미쓰비시 공장에 잠입해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김정아 부평역사박물관 총괄팀장이 이연형 선생의 기록을 찾았고, 유족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면서 빛을 보게됐다.
1939년부터 1941년까지 부평에 있던 히로나카상공에서 직공일을 한 이연형 선생은 윤석균·송치호 선생의 권유로 조선독립당에 가입,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는 일을 했다. 공장에서 모은 돈을 성냥감에 잘 넣어 약속된 시간에 부평 어느 장소로 가면 넝마주가 다가와 “담뱃불 좀 빌립시다”라고 말을 건넸고 주변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성냥갑을 넘기는 것이 바로 이연형 선생의 임무였다.
그렇게 자금을 건네던 이연형 선생은 1942년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것이 우리가 이연형 선생에 대해 알고 기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야기다. 유족의 기억에만 존재하던 이연형 선생의 독립운동사가 인천 시민의 마음속에 새겨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총괄 팀장은 “보통 우리는 3·1절과 광복절이 되면 유명한 독립운동가만 생각하게 된다”며 “이연형 선생처럼 음지에서 독립운동을 한 분들을 찾아 잊혀졌던 삶을 재조명하고 기억하는 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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