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최대 난제였던 휴일근로수당 할증률은 재계 요구대로 현재의 150%를 유지하기로 했다. 공무원·공공기관에만 적용되던 법정 공휴일의 유급휴무 제도를 민간기업으로 확대하고, 사실상 무제한 근로를 허용하는 특례업종도 현행 26종에서 의료·운수 등 공익 분야 5종으로 축소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기업 규모에 따라 오는 7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세 단계로 나눠 시행된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국민 삶의 질이 한층 개선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는 최장 근로시간의 오명을 갖고 있다. 2015년 기준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이 2천113시간으로 35개 OECD 회원국 평균(1천766시간)보다 20% 가까이 많다. 과로사로 사망하는 사람도 한해 300명이 넘는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저녁이 있는 삶’과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해지고 줄어든 근로시간을 보충하기 위한 신규 채용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만큼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한다.
삼성전자, 기아자동차, 신세계 등 대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을 준비해 왔다. 하지만 중소·영세기업의 사정은 다르다. 유예기간이 지나 실제로 적용되면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법정 근로시간이 줄면 기업은 생산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인력을 추가로 고용해야 한다. 기존 인력을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법정 공휴일의 유급휴무 제도가 민간기업으로 확대되는 것도 기업의 인력운용에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주당 52시간이 적용된 후 기업이 현재의 생산 규모를 유지하려면 연간 12조1천억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특히 연장근로가 많은 제조업(7조4천억 원)과 운수업(1조 원)에 부담이 집중될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 규모별로는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비용 부담이 8조6천억 원으로 전체의 70%에 달했다.
중소기업은 지금도 구인난을 겪고 있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비용 추가부담과 구인난 가중의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다. 엄살이 아니라 중소·영세기업의 어려움이 심각하다. 이들 업계의 현실을 세심하게 살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 경영이 어려워져 업계 우려대로 ‘범법’ ‘줄도산’ 사태라도 벌어지면 근로시간 단축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무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활성화하고 경직된 노동시장도 유연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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