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소재 정보기술(IT) 제조업체 A사 대표는 지난해 가을만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이 회사는 벽면용 전자 디스플레이 제조 분야에서 손꼽히는 업체로 올해와 내년에 걸쳐 받아놓은 주문금액만 1천억 원이 넘는 우량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작년 10월 30억 원을 대출받지 못해 부도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
지난해 20여억 원을 들여 공장을 새로 짓는 과정에서 시공업자가 돈만 챙기고 종적을 감춘 것이 원인이었다. 당초 이 공장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한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A사 대표는 급한 마음에 시중은행에 주문량, 발주처에서 보낸 편지 등을 모두 보여주며 대출을 요청했지만 부채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결국 이 회사는 제2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직후 가까스로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A사 대표는 “당장 큰불을 끈 상태지만, 제2금융권 대출 금리가 높아 채무상환 부담이 상당하다”며 “앞으로 금리가 더 높아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도내 중소기업의 비은행권(제2금융권) 대출이 최근 1년 새 67% 넘게 급증해 21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은이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최대 규모다. 은행이 여신심사를 깐깐하게 하면서 대출 수요가 비은행권으로 쏠린 결과다.
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도내 중소기업의 비은행금융기관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21조1천904억 원으로 집계됐다. 당해 1월 14조 2천118억 원보다 67%나 급증한 것이다.
반면 은행권에서 중기 대출 잔액은 전년 동기 대비 8조 7천530억 원 늘어나 6.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시중은행의 대출심사 강화 여파로 대출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소기업들이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고 비은행권으로 발길을 돌릴 경우 금리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비은행권에서 중기 대출 비중이 가장 큰 상호금융은 지난 1월 기준으로 기업대출 금리가 연 8.85%로, 시중은행(3.68%)보다 2.4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중소기업의 대출 이자 부담은 앞으로 더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 여파로 국내 시중금리도 본격적인 상승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기 대출은 변동금리가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금리인상 시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장의 예상대로 한은이 금리를 올릴 경우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의 경영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대내외 압력이 과도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성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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