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권력의 醉氣와 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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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6 후 현역 군인들이 도지사, 경찰국장 등을 차지했다. 충남도지사는 E모 육군소장. 한 번은 지방 출장길에 도로변의 한 초등학교를 예고 없이 방문했다. 그때는 지방교육도 도지사가 관할했기 때문에 학교 시찰도 가능했다.

그런데 도지사를 운동장에서 맞이한 교장 선생님은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장군 계급장을 단 도지사는 가지고 있던 지휘봉으로 교장 선생님의 신발을 가리키며 “이거 고무신 아니야. 공무원으로서 정신자세가 안됐군”하며 호통을 쳤다. 그리고는 즉시 ‘직위해제’라는 무거운 징계를 내렸다.

 

도지사 앞에 구두를 신지 않고 고무신 바람으로 나타났다 하여 ‘직위해제’ 그렇게 서슬 퍼런 시절, 권력은 칼춤을 추었다. 그리고 소위 정치군인들은 그 ‘권력’이라는 게 얼마나 맛이 있는가를 알게 되면서 그 맛을 잃지 않기 위해 또 다른 큰 권력에 아부를 해야 했다.

 

우리는 권력하면 정치권력을 생각한다. 특히 국회권력.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선거라는 뜨거운 도가니 속을 통과해야 하고, 국회 배지를 달았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임기 내내 지역 유권자들을 허리가 휘도록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국회의원이 되면 무엇이 좋은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오래전 한 의원이 사석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국무총리고 장관이고 답변대에 세우고 국정 현안문제를 따질 때 국회권력을 실감하며 선거 때 고생한 것을 모두 상쇄시킨다’는 것. 하지만 여기까지는 좋은데 장관을 죄인 다루듯 윽박지르거나 저속한 언어로 호통을 치는 것은 권력에 완장을 찬 것이다.

 

최근에도 그런 장면이 TV에 보여줘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국회의원이 질문하는데 웃었다고 야단치는 것이다. 이럴 때 흔히 하는 말은 ‘국회를 무시하느냐’는 것. 그러나 세계에서 웃음을 웃었다고 야단치는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이와 같은 잘못된 권력의 취기(醉氣)가 정치권력에만 있는 게 아니다. 권력을 쥔 영화감독, 잘 나가는 배우, 학생들의 학점과 사회진출을 좌우할 교수, 심지어 대학 교문을 지키는 수위 아저씨에게도…. 어떤 대학생은 학교 다니는 동안 제일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은 그 학교 수위 아저씨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저씨가 잡상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출입을 허가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여기 이 구석진 곳에도 권력은 있구나’.

 

이처럼 과거의 정치권력 중심에서 점점 권력은 분화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진화되고 첨단화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긍정적 가치가 크다. 그래서 국회권력, 사법권력, 군사권력, 언론권력, 노동권력, 금융권력, 문화권력, 시민단체권력, 종교권력, 의료권력 등. 무엇이든 살아 있는 조직에는 ‘권력’이라는 두 글자만 씌우면 되는 세상이 됐다.

 

문제는 이런 권력이 그 소임에 충실하지 않고 삐뚤어진 취기가 발동하는 것이다. 돈에 취하면 세상은 부패하게 하고 성(性)에 취하면 세상을 타락케 한다. 요즘 어둠 속에 감춰졌던 추악한 권력의 성 탐닉(耽溺)이 ‘미투(Me Too)’라는 출구를 통해 세상에 노출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권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약자들이 성폭력성희롱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타락한 ‘권력의 취기’ 참으로 슬픈 일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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