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신고 내부망 사이트 실명만 가능… 조사 대상서 제외
내부 제도 개선 감사관실 직접조사 나서는 교육청과 대조
市 “정부 대응매뉴얼 개정하지 않는 한 조사 당위성 없어”
전국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후폭풍에 휩싸인 가운데 인천시가 익명의 성폭력 신고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시교육청이 내부 제도를 개선, 성폭력 등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익명의 신고에도 감사관실이 직접 나서 조사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20일 시에 따르면 내부망 사이트인 성희롱고충상담에 실명의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 담당부서인 여성가족국 국장을 비롯한 내부공무원과 외부상담사, 감사관실 직원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 연 후 사안에 따라 감사관실에 조사를 요청한다.
감사관실은 피해자와 가해자, 주변인물 등을 조사한 뒤 가해자에 대한 징계절차에 돌입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같은 절차 모두 피해자가 실명으로 신고를 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성희롱고충상담 사이트 자체도 피해자 또는 제3자가 실명으로 신고할 수는 있지만, 익명으로 신고할 수 없는 구조다.
피해자가 내부망 사이트 익명 게시판이나, 익명의 편지·투서 등의 형식으로 성폭력을 신고할 경우 가해자와 행위가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더라도 시 감사관실은 직접 조사에 나서지 않는다.
시 관계자는 “여성가족부의 대응매뉴얼에 따라 성희롱고충상담 사이트를 운영하고 실명으로 접수된 신고에 한해서만 조사에 나서고 있다”며 “정부가 대응매뉴얼을 개정해 내려주지 않는 이상 익명의 신고에 대해 조사할 당위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시교육청은 성폭력의 경우 핫라인(HOT-LINE)을 통한 실명 신고는 물론, 익명의 신고에 대해서도 감사관실이 조사에 나선다. 애초 익명의 신고에 대해서는 시처럼 조사에 나서지 않았지만, 성폭력 등 중대한 사안의 경우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우려해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기에 내부 방침을 바꿨다.
이처럼 방침을 바꾸게 된 이유는 지난 2012년 일부 학교장이 승진을 앞둔 여교사를 대상으로 성추행을 일삼고 있다는 투서가 전달됐지만, 익명이라는 이유로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당시 시교육청 감사관실은 약 두달 동안 인천지역 60개교 교직원 520명을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 부적절한 언행 등 부당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관리자 13명을 찾아내 징계 처분했다. 이후 시교육청 감사관실은 익명의 제보라고 하더라도 성폭력 등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조사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특히 현행법에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범죄신고자나 그 친족이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으면 그 취지를 조서 등에 기재하고 범죄 신고자 등의 인적 사항은 기재하지 않는다’고 적시돼 있다. 수사기관에서조차 익명의 신고에 따른 조사가 가능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도 교육청이나 수사기관 처럼 성폭력 등 신고자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익명의 신고에도 직접 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의 한 공무원은 “직원 내부망에 미투와 관련된 글이 올라 왔음에도 익명이라는 이유로 시가 조사 조차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시교육청이 익명의 신고에도 조사를 하는 것처럼 우리도 내부 제도를 개선해 피해자가 신원을 공개하지 않아도 조사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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