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렇게 변한 정모·군번줄 보며 유족·방문객 마르지 않는 눈물
전문가들 “안보없이 평화 없다”
갑작스러운 충격과 함께 격실의 불이 다 꺼졌다. 배는 우현으로 90도 기울어졌고 배를 타고 있던 승조원들의 몸이 1m까지 붕 떴다가 떨어졌다. 몇 격실에는 바닷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 충격으로 최원일 당시 천안함 함장은 함장실에 갇혀 있다가 승조원이 내려준 소화호스를 허리에 묶고 외부 좌현 갑판으로 가까스로 탈출했다. 연기를 한창 내뿜고 있어야 할 함미의 연돌 부분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공기 중에는 기름냄새가 자욱하게 깔려있었다.
이는 지난 2010년 3월26일 오후 9시22분께 북한군의 어뢰에 천안함이 피격되는 사고와 관련한 국방부의 합동조사 결과보고서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천안함 8주기를 앞둔 지난 24일, 천안함이 있는 평택 2함대는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군복과 정복 차림의 안내 장교들 역시 표정에 진지함이 가득했다. 이들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서해수호관 2층 천안함 실에는 8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생생한 모습의 ‘기억의 나무’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기억의 나무에는 국민들이 돌아오지 못한 46 용사를 기리며 노란 리본에 적은 글귀가 달려있었다. “그대들을 기억하라”, “46명의 용사들이여 영원하리…”
발걸음을 안쪽으로 더 옮기자 북한군의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려진 ‘CHT-O2D어뢰’의 추진동력장치를 볼 수 있는데, 실제 이 장치는 현재 해군의 수장고에 보관 중이며 전시 모형은 방문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서해수호관을 나와 찾아간 천안함 기념관에는 8년 전 그날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듯 두 동강 난 실제 천안함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록 두개로 나뉜 모습이었지만 서해바다를 지키던 그 위용만큼은 여전해 출동명령이 내려지면 금방이라도 물살을 가를 것 같았다.
기념관 안에는 천안함 내부의 모습이 재현돼 있으며 돌아오지 못한 46용사의 유품전시실, 추모 공간 등이 마련돼 있었다. 특히 유품전시실에서는 전사자가 가지고 있던 가족사진, 갈색으로 누렇게 변해버린 정모, 군번줄 등이 방문객의 마음을 울렸다.
천안함에 승함한 지 보름 만에 피격사건으로 운명을 달리한 장철희 일병의 사연에는 많은 이들이 안타까운 눈물을 짓기도 했다. 이곳을 찾은 정경숙씨(73ㆍ여)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마음이 저려오고 눈물이 흐른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과거를 잊지말고 항상 안보태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며 “남과 북의 평화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안보태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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