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입춘이 지나고 춘분이 되었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봄비가 내리고 개구리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도 지나고 이제 춘분과 함께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였다. 봄은 해가 길어지면서 날씨가 따뜻해지고 나무에 움이 트기 시작하는 새로움의 계절이다.
우리말 봄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굳었던 땅에 움이 돋고 앙상한 가지에 새싹이 나오는 것을 ‘새로 본다’는 뜻에서 ‘보다’의 명사형 ‘봄’에 온 것이라고 한다. 한자로 봄을 뜻하는 春은 ‘뽕나무에 새순이 돋는 날’을 뜻하고, 영어로 봄인 ‘spring’은 ‘바위틈 사이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것’을 말한다. 새싹은 지극히 작고 연약하지만 굳게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생명의 힘이 놀랍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종교적으로도 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게르만계의 일족인 튜튼족은 춘분에 그들이 섬기는 봄의 여신 이스터의 축제를 열었다. 이스터 축제는 나중에 기독교에서 십자가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그래서 부활절을 영어로 ‘이스터’(Easter)라고 한다. 예수의 부활을 제일 먼저 목격한 사람들은 일요일 새벽에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었다.
지중해변의 우가릿(Ugarit)에서 발굴된 고대 가나안 신화에 보면, 겨울은 ‘모트’(Mot)라는 ‘죽음’의 신이 지배를 하였는데, ‘아낫’(Anat)이라는 전쟁의 여신이 ‘모트’를 죽였다. ‘모트’의 죽음으로 봄이 시작되면서 천둥과 풍요의 신인 ‘바알’(Baal)이 부활하였다.
유대인들은 봄에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해방된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지킨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모세는 어릴 때 이스라엘 남자 아이는 다 죽이라는 이집트 왕의 명령 때문에 어머니가 그를 갈대 상자에 몰래 숨겨 나일 강에 띄웠는데 이집트 공주가 발견하여 목숨을 구했다.
이처럼 신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봄은 여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약자인 여성들이 죽음의 권세를 가진 권력자들의 손으로부터 봄의 기운을 살려내고 새로운 시작을 하도록 하였다. 겨울이 죽음이라면 봄은 생명이다. 겨울이 남성이라면 봄은 여성이다. 겨울이 억압이라면 봄은 해방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에 일고 있는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은 봄을 여는 사회운동이다. 미투 운동은 성차별이나 계층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의 억압에서 약자들이 해방되어 공정한 사회를 이루어가고자 하는 노력이다.
봄이 되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겨울이 유난히 추웠던 만큼 여름은 더욱 무더워지고, 반면에 봄과 가을은 그만큼 짧아질 것이다. 농부들이 묵은 땅을 갈고 씨를 뿌리듯, 무더운 여름을 이기고 결실의 가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도 봄 새싹이 나듯 모든 사람들이 다 새로운 기운과 희망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임봉대 인천시 박물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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