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공무원 선거에 줄서기, 눈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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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만 있는 특별한 직업 중 하나가 줄서기 알바다. 실외는 시간당 1만5천 원, 실내는 1만 원을 받는 아르바이트인데 줄서는 수요가 급증하자 줄서기 대형 전문 블로그도 생겼다.

 

지난 겨울에 유행을 몰고 왔던 롱패딩 판매 때에도 새벽부터 백화점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아예 줄서기 알바가 단단한 역할을 했다. 롱패딩뿐 아니라 신발 등 특정 상품을 한정 판매한다는 광고를 내보내면 줄서기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야 할만큼 히트를 치는 경우가 있다. 이렇듯 수량을 제한해서 공급한다는 것은 줄서기가 필수적이다.

이름난 유치원 원생 모집이 그렇고 추석 열차표 예매와 아파트 분양이 그렇다. ‘로또 아파트’라고 불리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디에이치자이 개포 모델 하우스 앞에서는 지난 16~18일 무려 1㎞가 넘는 긴 행렬을 이루었는데 약 4만6천명이 몰린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같은 기간 과천의 위버필드 모델하우스에도 2만7천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처럼 한정된 수요와 공급은 도리없이 줄서기가 이루어지고, 그 줄서기는 끼리끼리 문화, 계파 정치, ‘지역주의’를 만들어내게 된다.

 

조선시대 우리의 사색당쟁이 극심했던 것도 자리는 한정돼 있고 자리를 차지하려는 양반의 자제들이 넘쳐나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조전랑’(吏曹銓)은 정5품, 정6품의 벼슬이었지만 관원의 선발권을 갖는 실권 때문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자리를 어느 계파에서 차지하느냐에 따라 계파의 운명이 판가름 날 정도였다.

 

동서(東西) 당쟁의 시발이 된 심의겸(沈義謙)과 김효원(金孝元)의 싸움도 이 자리다툼에서 시작됐다. 당시 심의겸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가 살고 있는 곳이 한양 서쪽 정동이어서 ‘서인’이라 했고, 김효원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한양 동쪽 건천동에 살았기 때문에 ‘동인’이라 했는데 이들의 치열한 대결은 시간이 흐르면서 노론, 소론, 남인 등으로 분화되어 ‘사색당파’의 정점을 이루게 된다.

 

마치 ‘3金’ 정치시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그 사는 곳 ‘동교동’ 이름을 따서 ‘동교동계’라 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 세력을 ‘상도동계’, 김종필 전 총리 세력을 ‘청수동계’라고 한 것과 같다.

 

어쩌면 우리 정치는 변하지 않고 옛날대로 악습을 되풀이하는 것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자리는 부족하고 그것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은 아파트 청약처럼 추석 열차표 예매처럼 넘쳐나기 때문일까. 그래서 낙하산 인사, 코드 인사, 계파독식 등 요즘 용어로 치장되지만 그 혜택을 누리기 위해 줄서기에 몸살을 앓는 것은 동인, 서인, 노론, 소론, 남인, 북인… 그때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최근 경기일보 보도에 의하면 6·13 지방선거가 가까워지면서 공무원들의 줄서기, 선거개입 등 선거 분위기를 흐리는 작태가 우려스러울 수준이라고 한다.

 

E시에서는 단체장 후보와 학교 동문관계 공무원들이 ‘서로 패를 지어’ 선거를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으며, D시에서는 일부 간부 공무원들이 여당의 유력 주자와 식사 자리를 갖는 등 차기 단체장 줄대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시에서는 시의회 공무원이 특정 후보의 홍보지원 사례까지 알려져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현직 단체장이 출마한 곳의 공무원들은 선거 후 인사상 이익, 불이익 계산 때문에 공무 수행에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줄서기 순회’의 크게 잘못된 폐단이 아닐 수 없다. 줄서기를 하는 것도, 줄 세우기를 강요하는 것도 유권자들은 눈을 크게 뜨고 감시를 해야 할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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