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워라밸과 가치관

이관식 지역사회부장 k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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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상영한 영화 ‘국제시장’은 격동의 한국사 속에서 가장의 헌신과 희생을 그려 노년층과 장년층의 관심을 끌었다. 주인공 덕수는 6ㆍ25 때 흥남에서 넘어와 서독 광부, 월남전 군수물자사업 등으로 치열하게 가족을 먹여 살렸다. 

영화의 마지막은 늙은 덕수가 아버지 사진을 보며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라는 독백으로 끝난다. 그는 어머니와 동생을 잘 돌보라는 아버지의 유훈을 지켰지만, 그의 삶은 가족에 대한 희생과 헌신이 전부였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사회에서 직장생활은 먹고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부모님과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선 나를 포기해야만 했다. 어떤 직업을 갖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지금껏 기성세대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이를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예전에는 높은 연봉이 꿈의 직장이었다면 이제는 복지가 좋은 직장이 꿈의 직장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등장한 것이 ‘워라밸(Work-Life-Balance)’이다. 일(work)과 개인의 삶(life)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Work-Life-Balance)’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렇다 보니 직장인도, 기업도, 정부도 워라밸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분주하다. 정부는 ‘일가정 양립과 업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근무혁신 10대 제안’을 제시하면서 워라밸의 확산을 독려하고, 기업들은 유연근무제, 재택근무제, 원격근무제 등을 도입해 직장인의 업무 능률을 제고하고 있다. 직장인은 ‘저녁이 있는 삶’에서 새로운 소비 패턴을 만들어 냄으로써 내수 진작의 효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

 

그러나 여가 시간을 확보한다고 해서 삶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진정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것은 가치관의 소관이다. 왜 사는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이 무엇인지를 정립하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그래서 쉴 때도 행복해질 수 있다. 왜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 가치관도 없는 사람은 여가 시간이 늘어났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이관식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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