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어 출동한 경찰에 그 젊은이는 연행됐는데 조사 결과 민주당 당원으로 신원이 밝혀졌고 ‘안희정 지사가 여비서를 성폭행한 것에 화가 나서 그랬다’는 진술을 했다. 이때부터 충남도지사 관사가 갑자기 세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지사 관사가 성폭행 장소의 하나로 지목되면서 ‘관사 폐지’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난주 충남도의회 이기철 의원은 관사는 중앙집권적 체제에서 자주 전근을 다니는 공무원을 위해 필요했는데 이제 지방자치시대가 됐으니 필요없다며 폐지를 주장하는 5분 발언을 했다.
사실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17개 광역단체 가운데 단체장의 관사가 있는 곳을 17개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폐지했다. 아예 매각한 곳도 있지만 어린이집과 같은 복지시설로 전환한 곳도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충남도지사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한결같이 관사 폐지를 주장하거나 최소한 재검토를 공약하고 있다. 안희정 지사의 성폭행 혐의로 빚어진 문제가 생각지도 않았던 도지사 관사 폐지로 이어진 셈이다.
그 불을 붙인 사람은 야구방망이를 던져 지사 관사의 유리창을 깬 30대 젊은 민주당원인지 모른다. 혈세로 운영되는 관사가 불미스런 장소로 이용됐다는 것, 그 배신감이 그 젊은이를 화나게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사연이 배어 있는 관사이기에 다음 도지사가 입주한다 해도 전임자의 찜찜하고 이미지가 남아있어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이래저래 충남도지사 관사는 손을 봐야 할 처지가 됐다. 충남도지사 관사가 이렇게 말썽의 표적이 된 것은 과거에도 있었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극비리에 대전으로 피난을 와서 도지사 관사에 입주했다. 갑자기 도지사 관사가 임시 경무대(지금의 청와대)가 된 것이다. 대전 시민들조차 이 사실을 모를 정도 철저한 통제 속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가운데 6월27일 밤, 이승만은 이철원 공보처장을 불렀다. 대통령은 서울 시민들에게 방송을 해야겠으니 방송국으로 전화를 걸라고 지시했다. 대전에 피란 온 것을 비밀로 한 대통령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아직도 서울에 건재하다는 것을 서울 시민에게 알리려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또한 전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전화로 연결된 이승만 대통령의 육성은 서울 중앙방송국을 통해 전파를 타고 전국에 퍼져 나갔다. 이 거짓 방송은 서울을 더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북한군의 포성이 들려오는데도 ‘안심하라’는 대통령의 방송연설에 피난을 하려던 많은 시민들이, 다시 짐을 풀고 마음 놓고 있다가 그냥 희생을 당한 것이다.
나중에 이 문제가 불거져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크게 위협했으며 ‘충남 도지사 관사’가 또한 시비의 대상이 됐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도지사 관사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곳에 사는 주인공의 양심, 충성심, 애국심이 문제가 아닌가.
야구방망이를 맞고 유리창이 깨진 도지사 관사 현관문만 애꿎게 됐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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