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선생님과 팔순 제자… 詩로 만난 운명이죠” ‘20년 사제 인연’ 고은영 시인과 임성복 할머니

주민이 만든 상록한문학당서 만나
한문·철학 등 다양한 분야 나눠
“서로에게 배우는 순간순간이 행복”

▲ 상록한문학당의 고은영 선생님(오른쪽)과 임성복 할머니(왼쪽)가 그동안 공부한 공책을 들고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수습 이광희기자
▲ 상록한문학당의 고은영 선생님(오른쪽)과 임성복 할머니(왼쪽)가 그동안 공부한 공책을 들고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수습 이광희기자
“인생불학(人生不學) 여명명야행(如冥冥夜行), 배움이 없으면 어두운 밤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에 있는 공부모임인 ‘상록한문학당’에는 만학을 전하는 고은영 시인(72ㆍ여)과 이를 익히는 임성복 학생(89ㆍ여)이 있다.

 

지난 2003년 시인으로 등단해 시집 2권과 시 100여 편을 출간한 고은영 시인은 일제강점기 한(漢)학자였던 아버지를 어릴 때부터 늘 곁에서 지켜보며 교육자의 꿈을 키워왔다. 

특히 일본의 탄압 아래에서 우리말로 제자들을 가르치며 “배움이 있어야 잃어버린 나라를 찾을 수 있다”던 아버지의 말이 강하게 뇌리에 남아있던 고 시인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언젠가는 누군가를 가르쳐보고 싶다고 다짐해왔다. 그렇게 만나게 된 ‘제자’가 바로 임 할머니다.

 

임성복 할머니는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때 전교 수석을 도맡아 하던 수재였지만 중학교가 40km 떨어진 해주에 있어 진학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다시 배움에 도전해보겠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탓에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기도 벅차 공부를 할 수 없었다.

▲ 상록한문학당에서 고은영 시인과 임성복할머니를 비롯해 마을 주민들이 상록한문학당 20주년을 축하하는 기념식을 가지고 있다. 수습 이광희기자
▲ 상록한문학당에서 고은영 시인과 임성복할머니를 비롯해 마을 주민들이 상록한문학당 20주년을 축하하는 기념식을 가지고 있다. 수습 이광희기자

그런 두 사람에게 지난 1998년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상록한문학당은 ‘교육 열망’을 채워줄 수 있는 꿈의 공간이었다. 25년 전인 1993년 통장과 반장으로 인연을 맺었던 그들은 상록한문학당이 생기면서 새롭게 스승과 제자로 운명 같은 만남을 시작했다. 고 시인과 임 할머니는 문학, 한문, 시사상식,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배움을 나눴다.

 

고 시인은 “임 할머니는 아집이 없고 오직 배움의 열정만 가득하다. 배움엔 끝이 없다는 명제를 스스로 직접 실천하시는 분”이라면서 “이런 훌륭하신 할머님께 가르침을 드릴 수 있어 저 역시 배우는 게 많고, 지금 이 모든 순간이 행복하고 영광”이라고 미소 지었다.

 

이에 임 할머니는 “고 선생님(시인)을 만나 인생 제2막을 열어갈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하다”며 “평소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선생님에게 지식뿐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도 배운 게 많았다. 훌륭한 분과 함께해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이어 이들은 “우린 나무와 새처럼 이젠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라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겐 세상 그 어떤 순간보다 소중하다”고 웃어 보였다.

수습 이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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