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축하받지 못하는 ‘스승의 날’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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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인 A교사는 수업시간에 떠드는 남학생에게 주의를 줬다가 주먹으로 얼굴을 맞아 윗니에 금이 갔다. 당황한 A교사가 도움을 청하려고 내선 전화기를 들자 학생은 전화기 코드를 뽑아 내팽개쳤다. 하지만 학생 어머니는 A교사 때문에 아들이 계속 스트레스를 받다 벌어진 일이라며 아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최근 A교사와 같은 교권 침해 사례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해 교권 침해 상담 건수는 508건으로 10년 전인 2007년(204건)과 비교해 2.5배 증가했다. 지난해 교권 침해 중 학부모에 의한 사례가 267건으로 절반을 넘었다. 학생이 교권 침해한 경우는 60건이었다. 주로 교사에게 폭언·욕설을 하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형태였다. 교사를 때리거나 성희롱한 사례도 있었다.

 

학생이 교사에게 폭언·폭행·성희롱 등을 해 교육 활동을 침해하면 심리치료 이수, 봉사, 출석 정지, 퇴학 처분 등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무 교육 대상인 초등학생·중학생은 퇴학시킬 수 없고, 교권 침해를 한 학생을 전학시키거나 학급을 바꾸도록 하는 법령은 없다. 피해 교원이 자발적으로 다른 학교로 옮겨 가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다. 그나마 학생이 교권 침해를 하면 징계라도 할 수 있지만 학부모에 의한 피해는 적극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임금과 스승, 아버지는 같은 반열이라는 뜻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나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은 옛말이 됐다. 스승을 너무 함부로 대하고 있다.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이 날은 세종대왕 탄신일이기도 하다. 정부가 스승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되새기기 위해 세종대왕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제정한 것이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야말로 영원한 스승이라 여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한 송이도 드릴 수가 없다. 2016년 9월부터 시행된 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 걸리기 때문이다. 대학가에선 카네이션 대신 ‘감사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초중고교에선 논란 소지를 없애기 위해 ‘재량 휴업’을 하는 곳도 있다. 꽃 한송이, 음료수 한병도 문제가 되니 교사와 학생이 만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축하받지 못하는 스승의 날’은 스승의 날을 아예 폐지하자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스승의 날을 폐지해 달라’는 청원엔 1만명 넘는 이가 동의했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부담과 자괴감이 드는 스승의 날. 무엇이 잘못된 걸까, 누구의 잘못일까.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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