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훈 기려 2013년 대통령표창
21일 오후 2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한 켠에서 만난 애국지사 故 임광세 선생의 아들 임모씨(60)는 슬픔을 감춘 채 담담하지만 격조 있는 어조로 아버지를 설명했다. 그에게 임 선생은 항일투사로서는 강인하고 매서운 사람이었지만 한 가정의 아버지로는 누구보다 공평하고 가족에게 따뜻함을 알려주던 사람이었다.
그는 “항일투쟁을 하던 아버지는 회유와 협박 등 수많은 옥고를 치르시면서도 흔들리지 않으셨던 분이었다”며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을 졸업 후 출세의 길이 열려 있었음에도 나라를 위해 온몸을 던지셨다”고 말했다. 이어 “강인한 아버지도 가족에게 만큼은 공명정대하셨던 분이었다”면서 “3남 1녀인 우리에게 나이, 성별 구분없이 똑같이 사랑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기억했다.
故 임광세 선생은 지난 1944년 8월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 재학 중 동료와 함께 ‘조선민족해방협동당’에 가입해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했다. 1944년 10월께 임 선생은 항일무장투쟁의 일환으로 미국으로부터 B29 폭격기를 통해 무기를 산속으로 공중 투하하게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포천의 아지트로 입산하던 중 체포돼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됐다.
당시 유난히 추웠던 한겨울 형무소에서 옷 하나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갖은 고문을 겪었지만 꼿꼿한 정신력으로 임 선생은 민족투사로서 기개를 잃지 않고 형기를 마쳤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지난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하지만 이토록 강인한 임 선생도 세월과 병마를 이기지는 못했다. 용인 수지구에서 여생을 보내던 임 선생은 폐렴으로 5월 초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다가 차도가 없어 용인효자병원으로 옮긴 후 지난 19일 오후 3시에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임광세 선생이 작고하면서 경기도에는 총 11명의 애국지사만 남게 됐다.
한편 故 임광세 선생의 발인은 22일 새벽 5시20분에 이뤄지며 임 선생은 대전현충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수습 이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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