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자 중앙 일간지에 크지 않게 부음 광고가 실렸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별세했다는 소식이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차분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습니다. 가족 외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합니다. 생전 자신으로 인해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지 않아했던 고인의 뜻에 따른 것이오니 양해해 주시기 바라며…’라는 내용이다. 구 회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도 유가족은 이 같은 안내문을 내붙였다.
구 회장의 장례식장엔 조화가 6개뿐이었다고 한다. 대기업 회장 등이 보낸 조화가 여럿 배달됐지만 유족이 정중히 돌려보낸 것이다. 장례는 3일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재계 인사 장례가 회사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러지는 것은 이례적이다. 구 회장은 생전에 시간과 돈 낭비가 많은 장례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뜻이 강했다. 이에 가족들은 “남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하고 간소하게 지내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를 치른 것이다.
향년 73세로 타계한 구 회장은 대기업 오너였지만 격식을 차리지 않는 소탈한 성품의 경영자였다. 권위주의와 담을 쌓고, 검소한 이웃 아저씨같은 모습으로 주변을 배려했다. 그는 저녁 자리가 늦어지면 운전기사를 먼저 보내고 택시를 타고 귀가하기도 했다. 휴일에 지인의 경조사 등 개인적인 일에 비서없이 혼자 다녔고, 공식 행사나 출장 때도 수행원 한 명만을 대동했다. 자녀의 혼례는 작은 결혼식으로 치렀다. 1년간 투병하면서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존엄사를 택했다. 또 간소하고 조용한 장례에 화려한 봉분 대신 화장을 원했다. 구 회장의 유골은 그가 생전에 공들여 가꾼 경기도 광주의 화담숲에 묻힐 예정이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수목장이다.
‘편법ㆍ불법을 해야 1등을 할 수 있다면 차라리 1등을 안 하겠다’ ‘국민이나 사회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면 (기업은) 영속할 수 없다’ ‘세상이 각박해졌어도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義人)에게 기업은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실천에 옮긴 구 회장은 ‘흔치 않게’ 존경받는 대기업 오너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제대로 실천한 기업인이다.
재계의 탈법과 갑질 등 비정상적인 행위에 반기업 정서가 팽배해 있는 한국사회, 구 회장의 삶이 다른 대기업 오너들에게 귀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면 좋겠지만, 최소한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는 메시지만이라도 가슴에 새기고 실천했음 좋겠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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