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이웃 돕기 ‘말뿐’… 복지시설 명의도용 개인사업자만 배불리는 ‘마술상자’
선한 마음 교묘히 악용 ‘상술 전락’ 일부는 장기간 방치 쓰레기통 착각
일선 지자체 사실상 강건너 불구경
“집이 여기서 10분 거리인데, 불우이웃 돕기에 쓴다는 생각 때문에 직접 헌옷을 가지고 왔어요.”
부평구의 한 헌옷수거함에 정성껏 옷을 넣고 있던 A씨(32)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표정이 돌변하며 아연실색했다.
헌옷수거함에 모인 옷들이 불우이웃이 아닌 개인 사업자들의 배를 채우는데 쓰인다는 기자의 설명을 들은 뒤였다.
A씨는 “의류수거함 앞에 버젓이 복지시설 명칭까지 적혀있지 않느냐”며 “당연히 그들을 위해 쓰인다고 생각해 좀 멀어도 자주 이용했는데, 배신감이 든다”고 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헌 옷을 모아 불우이웃을 돕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헌옷수거함이 지자체의 부실한 관리 속에 쓰레기통으로 전락하거나 복지단체 명의를 도용해 주민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22일 인천시 등에 따르면 헌옷수거함은 헌옷 수집 후 재활용품으로 매각해 수익을 얻으려는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헌옷수거함 외부에는 장애인 협회 등 복지협회 명칭이 적혀 있었지만 단체 측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한국교통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우리는 명의를 빌려준 적도 없고 그런 사업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폐지 등에 비해 의류가 더 비싼 값을 받자 헌옷수거함도 우후죽순 늘어났다. 쓰레기통으로 전락하거나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흉물이 된 경우도 많았지만, 시나 군·구 차원의 운영방안은 전무했다.
실제로 8개 구를 확인한 결과 모두 운영방안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았고, 3곳은 설치된 수거함 수조차 몰랐다.
남동구와 부평구 관계자는 “몇 곳을 빼고는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없고 영리목적으로 무단 설치된 곳들이 많다”면서도 “불법이라는 것을 알지만, 일부러 방치한 것이 아니라 국가나 지자체가 많이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했다.
인천시는 지난 2013년부터 헌옷수거함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통합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확인 결과 시스템은 마련되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별도로 시에서 관리하는 통합규범은 없고, 각 군·구에서 담당자들이 알아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김경희·수습 이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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