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했지만 미투 운동이 잠잠해지고 있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찰국장에 의한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서 시작된 한국의 미투 운동이 100일이 넘었다.
고은 시인을 비롯해 안희정, 이윤택, 조재현, 김흥국 등 정·재계, 문화예술계, 교육계 가릴 것 없이 총 망라된 미투 운동은 성경 구절과는 반대로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결과는 미약’한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그동안 미투 운동과 관련해 총 70여 명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으나 구속은 이윤택 등 2건에 불과하다. 국회에 상정된 140여 건이 넘는 관련 법안은 단 한 건도 통과되지 않았다. ‘버티면 산다’는 인생수칙이 어김없이 통하고 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죽는 사람보다 사는 사람이 더 많다는 옛말이 예사롭지 않다.
미투가 수면 아래로 접어들려고 하자 점입가경이다. 사퇴 의사를 밝힌 국회의원은 슬그머니 철회하고, 폭로자를 상대로 오히려 고소를 하고, 막후에서 여론전을 펼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국민이 ‘망각의 민족’임을 잘 아는 족속들이다.
결국, 온갖 수모와 손해를 무릅쓰고 이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만 우스운 꼴이 됐다. 아니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사실을 알린 결과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서는 안 된다.
미국의 코미디언 빌 코스비의 성폭력을 폭로한 여성들이 겪은 수난사를 보면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된다. 30여 년에 걸쳐 60여 명의 여성이 코스비에게 성폭행 및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폭행으로 기소된 형사사건은 단 1건이다.
힘없는 목소리는 묻힌다. 공소시효라는 법적 피난장치도 있다. 우리의 미투는 폭발적인 힘을 얻었다가 태풍의 꼬리처럼 언제 그랬느냐는 식의 전철을 다시 밟고 있다.
제도의 정비와 언론의 지속적 관심이 계속돼야 한다. 폭로자들을 향한 2차 가해가 없도록 세심한 배려도 있어야 한다. 성폭행의 공소시효를 늘리고 공소시효가 지나더라도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면 검사가 기소할 수 있는 미국 일부 주의 경우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캘리포니아 주는 아예 공소시효를 없애기도 했다.
수사, 기소, 처벌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을 버텨낼 피해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시간을 단축해 가해자를 감호치료나 다른 형태의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다. 언젠가는 밝혀지고 처벌된다는 두려움이 있어야 문제가 해결된다.
나는 언제 터질까 두려움에 떨던 가해자가 ‘이제는 끝나가나 보다’라고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또 다른 기회를 노리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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