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는 영화 ‘제인 에어’를 보며 약 40년 전에 받았던 감동을 상기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런던의 국립초상화박물관에 들러 ‘샤롯 브론테 탄신 200주년 기념전’을 관람했는데, 브론테 세 자매의 인물 사진과 육필원고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세 자매의 흑백 초상화는 모두 젊은 모습이었으며, 중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의 유일한 남자형제 브란웰이 그린 채색된 그림에는 세 자매가 함께 그려져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이들 사이에 사람이 하나 들어갈 공간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자매들 사이에 자신의 모습도 같이 그려 넣었는데, 나중에 자기 얼굴은 지워버려 세 자매만 남은 그림이 됐다고 한다. 전시장를 보며 나는 이 세 자매가 모두 40살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샬럿은 단명했지만, 그녀의 문학작품은 오래도록 남아 탄생 200년을 맞게 됐다. 브론테 세 자매는 자손을 남기지 못했으나, 그들의 작품은 여러 독자에게 여전히 영감을 주고 있으므로, 그들의 문학적 DNA는 여전히 복제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요절한 훌륭한 작가인 브론테 자매들과 마찬가지로, 학자나 연구자도 또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학술적 DNA를 후대에 남길 수 있을까?
나는 우리의 지식이 과학 논문을 통해 불멸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오래도록 남는 논문을 쓸 수 있을까? 오래 남는 논문은 오랜 기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기억되는 논문일 것이다.
독자에게 기억되고 사랑을 받으려면 독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의사에게 유용한 논문은 실제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에게 도움이 되는 논문일 것이다.
연구의 순서(첫째로 연구하라, 다음 증명하라, 그리고 기술하라)는 앤 브론테가 ‘윌드펠 홀의 세입자’에서 이야기한 사랑의 세 단계(첫째 공부하라, 다음 증명하라, 그리고 사랑하라)와 비슷하다.
우리는 호기심을 가지고 이전의 연구에 대해 상세히 살펴봐야 한다. 다른 연구자의 논문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시작할 수 있다.
논문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증명해야 한다. 남이 한 것을 모방해 실험하고 ‘나도 해봤더니 그렇더라’는 논문(Me-too paper)은 논문 수는 채울 수 있을지언정 단명할 수밖에 없다. 실험을 해보면 연구 결과가 기대했던 것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작성된 논문은 독자들이 읽기가 수월하다. 고찰에서 사고의 비약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학자가 ‘독자 친화적’으로 논문을 쓰면, 독자는 읽기에 편하게 느끼고, 따라서 인용될 기회가 더 생길 것이다.
브론테 자매들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줬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학자가 쓴 논문이 ‘실제 현장’ 독자들에게 도움된다면, 그 논문은 기억될 것이며 여러 세대에 걸쳐 인용될 것이다.
이 원고는 [Hwang K. Ephemeral or Timeless?: The Bront Sisters. J Craniofac Surg. 2016;27:1923]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2차출판한 것임.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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