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6·13_그는 누구인가?]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인천시장 후보

인천 새로운 시작… 소신과 정도 ‘공직 人生’ 시민과 더 큰 꿈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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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인천시장 후보는 인천 박문초등학교와 동산중학교, 제물포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 법대 행정학과, 영국 웨일즈대학원에서 국제운송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다. (民無信不立)’라는 각오로 1981년 공직을 시작해, 해운항만청과 해양수산부 등에서 바다 행정을 경험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을 지냈으며, 인천에서는 19·20대 국회의원(남동갑)에 당선됐다. 박 후보는 4·27 판문점 회담을 바탕으로 ‘평화와 번영 도시 중심 인천’을 만들겠다며 인천 정권 교체에 나섰다.

▲어린 시절부터 봉사에 눈 뜨다.

과일장사 어머님과 인천 미8군 항만사령부 군무원 아버지.

전쟁의 설움을 안고 황해도 은률에서 인천으로 피난 나오신 부모에게 각별한 애정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시설 천주교 사립학교인 박문초등학교로 전학 하면서 자연히 천주교를 접했고 지금의 신앙생활을 하는 계기가 됐다. 동산중학교 2학년 때 쪽방촌 이웃 사람들의 팍팍한 삶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청소년적십자회(RCY)에 가입,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이것을 계기로 제물포고등학교 시절에도 RCY의 경기도 지역 중등부 회장을 맞아 농촌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제물포고 1학년 때에는 전통 운동서클인 야간농구부에 가입했다.

당시에 “인생은 마라톤 풀코스다. 몸이 건강해야 대학입시까지 흔들림 없이 갈 수 있고, 체력이 받쳐줘야 나중에 큰일을 할 수 있다”라는 각오였다.

 

이렇게 시작한 농구는 고등학교 시절 취미가 됐고,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시험 전날에도 어김없이 코트를 지켰다.

 

물론 집에서는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고려대 법대 2학년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한 교수님의 “미국 같은 선진국들은 법조인이 인정받는 시대에서 행정가들이 주도하는 행정국가로 바뀌었네. 우리나라도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고 유능한 행정가가 되어 세계를 무대로 역량을 펼치는 것이 어떤가. 굳이 법관이 되에 작은방에서 한평생을 보낼 것인가?”라는 말씀에 진로가 바뀌는 계기가 됐다.

 

이 말씀을 계기로 부모님과 주변 친구들이 기대하던 법관의 꿈을 접고 행정가로 나서게 된다.

▲공직자는 국민의 신뢰를 먹고산다

1981년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수습사무관을 시작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행시 합격생 동기들이 선호하는 곳은 내무부와 경제관련 부처이지만 비인기 부서인 해운항만청을 지원했다.

이렇게 바다 행정과 첫 인연을 맺었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다(民無信不立)’

논어에 나오는 한 구절로 공직자가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진실해야 하고 진실을 믿고 원칙과 소신에 따라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원칙과 신뢰’라는 공직 생활의 좌우명은 가슴에, 양복 주머니에는 사직서를 각각 품고 다녔다.

전두환 5공화국 시절, 해양항만청에서 엄청난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부산항 관내 공유수면 매립 업무를 맞았다.

 

당시 ‘살아있는 권력’으로부터 대통령의 형이 대표를 맡은 업체에 이권 편의를 주라는 압력을 받았다.

 

이 업체는 지역주민과 갈등으로 공사를 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직접 해운항만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넣을 정도였다. 하지만 업체와 주민을 설득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절차를 밟아 9개월만에 문제를 해결했다.

 

노무현 대통령 인사수석 시절에는 ‘삼다일공(三多一公)의 원칙을 갖고 임했다.

‘삼다’는 ‘다원(多源)’, ‘다청(多廳)’, ‘다로‘(多勞)’였으며, ‘일공’은 ‘공평무사(公平無私)’이다.

이 같은 인사 원칙으로 인사 잡음을 봉쇄하고,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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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에서 임기를 마친 고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찍은 모습.

▲정치 인간 노무현을 만나다.

노무현 국민의 정부 시절 해양부 근무 당시 국장 승진이 코앞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노무현 장관으로부터 승진은 고사하고 총무과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노 장관의 설득력은 대단했다.

졸지에 온라인 업무처리와 지식 관리를, 조직 혁신도, 공정함과 신뢰도 함께 받을 수 있는 능력자(?)로 평가 받았다. ‘혁신’이라는 낯선 단어 앞에 처음 섰던 이날 서점으로 곧바로 달려가 ‘혁신’이라 쓰인 책을 한 보따리 구입했다.

 

노무현 장관과 차관으로 맺어진 인연은 이후 대통령과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인사수석(차관급)까지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의 철학을 공유했고, 이를 실현할 시스템을 배우고 경험했다.

 

19대 인천 남동구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부터는 인천과 남동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단순히 정치를 하기 위한 터전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하는 삶의 터전으로 여겨왔다.

 

어린 시절에는 도림동(숫골) 과수원집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여전히 간석동에서 살고 계신다.

지역구에 논현경찰서, 남동우체국, 수인선 터널식 방음벽도 단계적으로 설치될 예정이고 남동공단은 최첨단 리모델링 단지로, 소래포구는 국가 어항으로 예비 지정되는 등 남동구 5대 숙원사업을 해결했다.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특권 폐지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300명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4년 의정 종합평가에서 7위, 인천지역 1위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도 최선을 다했다. 크게는 소방안전교부세를 신설, 국가의 안전예산을 확충했고, 남동구 골목 골목에는 범죄예방 CCTV 시스템을 구축해 ‘안전이 곧 민생이다’라는 원칙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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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 곧 성공 비결

제물포고등학교 시절 공부보다 농구를 더 열심히 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수업이 끝난 후 2~3시간 농구를 했다. 심지어는 입시가 코앞이었던 고3 때도 그랬다.

친구들로부터 ‘조금씩 쉬어가며 해라’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인생은 장거리 경주’라는 생각으로 체력을 기르고, 책상 앞에 앉을 때에는 모든 정신을 가다듬어 집중하는 전략이었다. 공부나 일도 체력이 받쳐줘야 끈기 있게, 집중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이때 운동을 통해 깨달았다.

1985.09 ~ 1989.06 부산지방해운항만청 해무, 항무담당(5급)

1989.06 ~ 1993.01 해운항만청 개발, 운항, 예산담당(4급)

1993.01 ~ 1993.09 부산지방해운항만청 총무과 과장(4급)

1996.01 ~ 1996.10 해운항만청 항만물류과 과장(4급)

1996.10 ~ 1998.03 대통령비서실 해양수산비서실 행정관(4급)

1998.03 ~ 1999.12 해양수산부 기획관리실 기획예산담당관(3급)

2000.12 ~ 2001.06 해양수산부 총무부 부장

2001.06 ~ 2002.01 국립해양조사원 원장

2002.01 ~ 2003.01 해양수산부 부이사관(중앙공무원교육원 파견)

2003.01 ~ 2003.02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위원회 전문위원

2003.11 ~ 2005.01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 실장

2005.08 ~ 2006.05 대통령비서실 인사관리비서관

2006.05 ~ 2007.12 노무현정부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차관급)

2012.05 ~ 2012.10 녹색기후기금(GCF) 인천유치 범시민 지원위원회 위원

2012.07 ~ 2016.04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위원

2012.07 ~ 2013.07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2012.07 ~ 2014.09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위원

2014.10 ~ 2015.05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부대표

2014.10 ~ 2015.05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부대표

2016.05 ~? 2017.06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간사

2016.08 ~? 2018.02 더불어민주당 인천광역시당 위원장

2017.07 ~ 2018.02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2016.05 ~ 2018.05 제20대 국회의원(인천 남동구갑/더불어민주당)

좌우명=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다. (民無信不立)

유제홍·수습 이승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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