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탈(脫)코르셋’ 바람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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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머리를 잘랐습니다. 미니스커트를 버렸습니다. 제모를 하지 않았습니다. 립스틱을 부러뜨렸습니다. 렌즈 대신 안경을 썼습니다.…’

 

10~20대 여성들 사이에 짙은 화장·긴 생머리 등을 거부하는 ‘탈(脫) 코르셋’ 바람이 불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른 긴 머리카락, 화장 안한 민낯, 부순 화장품 등의 인증샷을 올리며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코르셋은 여성의 몸을 날씬하게 보일 수 있도록 상반신을 조여주는 보정 속옷이다. 최근엔 긴 생머리, 날씬한 몸매, 짧은 치마, 화장한 얼굴 등 그동안 여성에게 가해진 모든 고정관념을 뜻한다. 이 모든 걸 벗어던지자는 의미로 ‘탈코르셋’ 운동이 생겼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가부장적 억압을 거부하는 움직임이다.

 

SNS에는 ‘#학생이 겪는 코르셋’이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10대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코르셋’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13세 여자 중학생이다. 요즘엔 학교에서 틴트나 미백 선크림 등 화장을 하지 않으면 찐따 취급을 당한다. 빠르면 4학년, 느려도 6학년쯤에는 다들 화장을 시작한다” “여고 1학년이다. 반 친구들이 아침마다 와서 화장하는데 다들 눈물 흘리면서 렌즈 끼고 있다. 왜 그렇게 힘들게 화장을 하냐고 물어보면 여자는 예뻐야 한다고 말한다.” 수면 부족과 식이 장애, 결막염 등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화장과 다이어트를 계속할 만큼 코르셋의 압박을 받고있는 10대 여학생들이 애처롭다.

 

실제 요즘 중ㆍ고 여학생들은 ‘풀 메이크업’을 한다. 맨 얼굴로 학교 가는 것은 ‘창피한 일’로 여기기 때문에 매일 아침 30분 정도 화장을 하거나, 화장을 못했을 경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다. 해시태그 운동은 이런 것을 ‘불편한 제약’ ‘부당한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여학생들이 늘면서 번지고 있다.

 

20대 여성들도 탈코르셋에 적극적이다. 탈코르셋 운동에 불씨를 지핀 건 ‘홍대 몰카 편파수사’ 논란이다. 피해자가 남성이란 이유로 경찰이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반발하며 거리로 나와 시위를 했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확산됐다. 1020여성들은 외모 치장을 ‘여성이기에 부당하게 감내해야 했던 성차별적인 노동이자 의무’라고 비판한다. ‘꾸밈노동’, ‘꾸밈노역’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코르셋 운동은 지난 주말 서울 강남에서 여성 10명이 상의를 탈의하는 시위로까지 번졌다. 그들은 ‘내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몸에 적었다. 상의 탈의에 논란이 있지만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억압을 벗겠다는 ‘탈코르셋’은 시대 흐름이다. 여성들의 자기성찰 운동이기도 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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