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8군 도와 미군에 훈장 받았지만 국가유공자 지정과는 상관 없어
“뒤늦게 명예 인정 받아 정말 다행”
5일 평택시 보훈회관에서 만난 최양춘씨(86)는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를 그리워하며 이같이 밝혔다.
최씨는 지난 1950년 12월 대한민국을 수호하고자 입대한 6ㆍ25 전쟁 참전용사다. 그는 지난 1951년 5월 대관령 방어전투에서 적의 기습을 받아 왼쪽 손목이 총탄에 의해 관통되는 부상을 입어 상이(傷痍) 제대했다.
하지만 고향이 함경남도라 남한지역에 아무런 연고도 없었던 최씨는 주한미군을 지원하기 위한 예비군 사단인 ‘한국노무단(KSC: Korea Service Corps)’에 자원입대해 군으로 돌아왔다. 6ㆍ25 전쟁 당시 KSC는 ‘지게부대’라고 불리며 미군에게 최고의 병참부대로 인정받았다.
이때부터 최씨는 예비군으로서 미국 제8군의 생활ㆍ수송 등을 돕는 임무를 맡았다. 필요 시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이 같은 공훈을 인정받아 미군으로부터 훈장과 표창을 받았다.
최씨는 “영어로 표기돼 있어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가족들이 버렸는지, 다시 보고 싶어 찾아도 없더라”며 “36년간 군 관련 일을 한 나의 자부심이자 결과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국가유공자 지정은 얼마나 다쳤는지 상이등급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훈장이나 표창 같은 공훈을 증명할 수 있는 게 있어도 반영되지 않았다”며 “2년 뒤 국가유공자 상이등급이 7급까지 늘어나 자격을 얻었다. 늦게라도 국가유공자 지정이 돼 나라에 헌신했다는 명예라도 찾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토로했다.
최씨는 이제 시간이 너무 흘러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들의 얼굴과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나이를 많이 먹으니 목숨을 함께한 전우들에 대한 기억도 잊혀가 아쉬운 마음뿐”이라며 “나는 뒤늦게라도 국가유공자 자격을 얻었지만 공훈을 인정받지 못하고 떠나간 전우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평택=최해영기자ㆍ채태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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