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은 중국 사신들이 한양으로 오기 위해 대동강을 건널 즈음 뱃사공으로 위장하여 강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일부러 애꾸눈 행세를 했는지, 아니면 정말 그 당시 한쪽 눈을 못 봐서 그랬는지 안대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중국 사신이 도착하여 배에 올랐고 김삿갓은 열심히 노를 저었다. 그런데 중국 사신이 김삿갓을 보고는 “한쪽 눈을 새가 쪼아갔군” 하고 비웃었다. 이에 김삿갓은 사신의 코가 삐뚤어진 것을 보고는 의연하게 “아하, 바람이 불어 코가 비켜 섰구나” 하고 대꾸했다.
디지털제주문화대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물론 김삿갓의 해학은 너무도 유명하지만 옛날 우리 선비들의 은유는 점잖으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멋이 있었다. 그래서 김삿갓의 재치 있는 한마디 반격에 중국 사신은 한양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렸다는 것이다. 언어의 힘이다.
그런데 시대가 가면서 우리의 언어가 거칠다 못해 욕설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특히 북한 평양방송이 우리정부나 미국을 비난할 때 쏟아내는 욕설은 섬뜩하다. 어떻게 방송용어가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제는 아예 ‘평양방송=욕설방송’으로 체념해 버렸다. ‘인간쓰레기’, ‘지X발광’, ‘입에 걸레를 물고…’ 등등 차마 지면에 옮기기에도 민망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에도 언어가 순화되지 않고 특히 정치권의 언어는 폭력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간의 ‘빨간 청개구리’, ‘왕파리’ 설전이 그렇고 이어 경기도지사 선거에 등장하는 ‘욕설파문’이 또한 그렇다. 이와 같은 정치 싸움으로 일어나는 인터넷상의 댓글은 누구 편을 들든 욕설로 도배를 한다. ‘정육점 아저씨의 심장수술’, ‘목을 잘라’, ‘XX놈’… 그리고 아예 우리말에도 없는 ‘개쉐이’ 등 변종 욕설까지 등장하고 있다.
국회를 가도, 지하철을 타도, 시장엘 가도, 온통 세상은 상스러운 언어로 가득 찼다. 심지어 가족들과 외식이라도 하려고 식당에 갔다가 자칫 술 마시는 젊은이들 옆자리에 앉게 되면 민망한 상소리에 자리를 옮겨야 할 때도 있다.
우리의 말과 글을 만들고 가꾼 세종대왕께서 오늘 이 땅의 언어문화를 보게 되면 통곡할 일이 아닌가?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은 선거를 앞두고 워싱턴에 있는 워터게이트 호텔 도청장치를 지시했다는 것으로 탄핵이 되었다. 그런데 이때 흥미로운 것은 자기 나라의 일도 아닌데 영국인들까지 닉슨의 탄핵에 적극 나선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닉슨의 비밀 녹음테이프에 나타난 저속한 표현의 영어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영어를 모독했다는 것. 그러니 아름다운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께서 오늘 우리의 저속한 상소리를 들으면 참으로 가슴 아파하실 것이다.
인류의 욕설을 재미있고 다양하게 다루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HOLY SHIT’(멀리사 모어 지음, 글항아리 출판, 서정아 번역)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교양 언어를 저장하는 대뇌가 있고 비속어를 저장하는 공간이 따로 있는데 뇌졸중이나 알츠하이머 등으로 대뇌가 손상을 입으면 ‘제기랄’ 같은 안 좋은 단어를 많이 쓰게 된다고 한다.
그럴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집단 뇌손상이라도 입은 것인가?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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