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은퇴는 타이어를 교체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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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는 영어로 리타이어먼트(retirement)이다. 즉 타이어를 교체하는 시기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은퇴는 차를 바로 폐차시키는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2016년 인천에서 자살노인에 대한 데이터를 기초로 인구사회학적 특성에 따른 자살실태를 역학적으로 분석했을 때다.

상식선에서 아는 바와 같이 독거노인이 가족과 동거하는 노인에 비해 자살률이 높다는 기존 연구와 달리, 실제 결과에선 배우자가 있는 노인이 배우자가 없는 독거노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살률이 높게 나왔다. 특히, 남자 자살노인의 65%가 배우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냈다.

 

이를 유의적으로 해석하면 남자는 은퇴 후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 가족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돈만 버는 기계로만 작동해왔던 우리의 아버지 세대가 은퇴 후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 성원들 간에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기가 힘든게 현실이다.

 

우리가 흔히 우스갯소리로 은퇴 후 필요한 것에 대해 여자는 돈, 건강, 취미, 친구, 딸 순으로 얘기하고 남자는 아내, 배우자, 부인, 처, 마누라 순으로 얘기한다고 한다.

 

그만큼 남자는 은퇴한 상황에서는 사회적 관계망이 좁아지고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하루 세끼를 모두 집에서 챙겨 먹는 속칭 ‘삼식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올해는 특히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는 원년이다. 이 세대는 우리나라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로 이 시기에 출생률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됐고,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세대는 724만명으로 전체인구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이토록 열심히 살아온 우리나라 베이비부머가 올해부터 갑자기 쓰나미에 휩쓸려 준비 없이 가정으로 복귀하는 ‘대략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들은 가정과 직장을 위해 쉼 없이 앞만 보고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려오신 분들이다. 이들에게 은퇴는 타이어를 교체하는 시기가 돼야 하는 것이다. 은퇴를 하게 되면서 예전 삶과 비교하면 소득도 줄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차량이 필요할 것이다.

 

쉼 없이 고속도로를 달렸다면, 이제는 타이어가 교체된 차량으로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다니면서 여유롭게 길거리에 피어난 꽃구경도 하고 동네 맛집에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시기다.

 

은퇴자들도 마찬가지로 예전에 큰 차로 운행하던 시절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금의 환경과 앞으로의 노후를 대비하면서 적절한 차량으로 교체하면서 기름값도 아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의 사회와 가정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이며, 가족 구성원들간에도 예전의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의사소통 방식은 가족갈등의 주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타이어를 교체하고 국도를 다니면서 여유를 즐길 때, 그 차량에 함께 할 가족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쉼 없이 가족들을 위해, 달려오셨던 그분들이 이제 편히 쉬면서 백세시대에 제2인생의 후반전을 맞이할 수 있도록 가족들의 따뜻한 응원과 정부의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한 때다.

 

정희남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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