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6·13_그는 누구인가?] 자유한국당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

‘인천을 대한민국 제2의 경제도시’로… 
내무부 잔뼈 행정의 달인 돌아온 고향… 열정 올인

▲ 3월5일 유정복 인천시장 인터뷰 (20)
자유한국당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는 인천 송림초등학교와 선인중학교, 제물포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연세대 행정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늘 일해야 한다’는 각오로 1981년 공직을 시작해, 강원도청과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 등에서 현재의 지방자치법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박근혜 정부에서 안전행정부 장관을 각각 지냈으며 민선 김포군수·시장, 17·18·19대 국회의원(경기 김포)에 당선됐다. 유 후보는 ‘인천을 대한민국 제2의 경제도시, 제1의 시민행복도시’로 만들겠다며 재선 출사표를 던졌다.

■ 어린 시절부터 공직자의 사명감 키우다.

유 후보는 1957년 6월 ‘수도국산’으로 불리는 인천의 대표적 달동네이자 피난민촌인 동구 송림동에서 4남3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북한 황해도 출신으로 6·25전쟁 때 남한으로 피난 온 실향민 가족이다. 부모님은 낯설고 물 설은 인천에 정착해 근면하고 억척스러운 생활력으로 7남매를 키웠다. 부모의 부지런하고 검소한 생활로 고교 3학년 때 송림동에서 남동구 간석동 2층 양옥집으로 이사했다. 당시 간석동은 개발 초기로 허허벌판이어서 동네 한가운데 자리를 잡은 2층 집은 대궐 같았다.

 

유 후보의 부모는 형제자매간 우애와 밥상머리 교육을 중요시하셨는데 어른 공경, 예의, 이웃 배려, 정직, 청결 등을 가르쳤다. 그러한 부모의 가르침은 유 후보에게 있어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고 공직자로서 의무이며 사명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자양분이 됐다.

 

송림초교와 선인중을 다닐 때 공부 잘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던 유 후보는 전국 명문 고교인 제물포고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80년)를 졸업했다.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 성공하기 위해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선생과 부모의 말을 들으면서 어린 나이임에도 나라에 필요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로 늘 공부에 열심이었다. 

특히 학창시절 축구를 잘해 ‘유세비오’란 별명도 얻었다. 대학시절 장발 머리에 청바지를 입고 친구들과 당구장을 드나들었고 제주도로 무전여행을 하는 등 대학생으로 낭만을 즐겼다.

제목 없음-1 사본.JPG

■22세 행정고시 합격...공무원으로 국가 봉사 보람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서 외교관의 꿈을 키웠으나 대학을 다니면서 행정 공무원으로 국가에 봉사하는 것도 큰 보람이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 진로를 바꿨다.

 

대학 4학년인 1979년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 1981년 강원도청에서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에 첫발을 디뎠다. 1981년 학사장교 1기로 임관, 최전방 강원도 양구 백두산 부대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중위로 전역했다.

 

1984년 9월 강원도청으로 복직해 기획관실과 공무원교육원에서 일을 했다. 이때 교육원에서 교관으로 헌법과 행정법을 강의했고, 내무부 연수원에서 주최한 전국 교관강의 경연대회에 출전해 1등을 했다. 이후 내무부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1987년 4월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으로 발령받아 지금의 지방자치법을 만드는데 기여했고 이후 교부세과 교부세 계장으로도 일하며 지방 재정에 관한 폭넓은 식견을 쌓았다. 이때의 경험은 인천시장이 되고서 전임 시장보다 행정안전부로부터 보통교부세(용도의 제한이 없는 정부 지원금)를 2배 이상(1조8천700억원) 확보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내무부 최고 부서라 불리는 행정과의 교육고시계장과 인사계장을 한 뒤 경기도 기획관을 거쳐 1994년 1월 ‘공무원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군수(경기도 김포군수)로 임명됐다. 전국 최연소 군수가 됐고 김포와 인연은 인생의 항로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제목 없음-2 사본.JPG
■ 빚은 갚고 문제는 풀고 희망은 열고

2014년 새해가 들어서면서 6월 지방선거로 정치권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5선의 인천 출신 황우여 의원이 인천시장에 적합한 후보라며 출마를 권유했지만 “(초교·고교)선배께서 나가시는 게 좋다”며 정중하게 사양했다.

 

지연이나 학연 없이 20년간 군수·시장과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김포시민의 뜨거운 사랑을 등질 수 없고, 정치적으로 형제와 같고 이미 시장 선거를 준비 중인 이학재 의원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민주당 송영길 시장을 대적할 인물로 추천하는 기류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해 2월 말 인천시장 선거 출마가 기정사실화하고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천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인천 곳곳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그 과정은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고향이긴 하지만 20년 이상 떠나 있어 이렇다 할 인맥이나 정치적 연고가 없어 답답했다.

 

시간이 지나 첫 출마 과정인 안상수 의원과의 당내 경선은 여유 있게 치러 한시름 놓았다. 3선 국회의원, 두 차례 장관 역임, 김포군수·시장 역임은 전문 행정인과 중량감 있는 정치인으로 능력을 보여줬고 민선 6기 인천시장에 당선했다.

 

힘겨운 선거에서 승리해 기분이 좋고 여유로움도 있었으나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인수위원회를 꾸려 시정 전반을 파악하는데 현안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는 것을 알고서다.

 

당장 10월로 다가온 인천 아시안게임을 치러야 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제3연륙교 건설, 서울지하철 7호선 청라 연장, 검단신도시·루원시티 개발사업 등은 수년째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었다.

 

1호 공약인 인천발 KTX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각각 2021년 개통되거나 개관된다. 3년 6개월이란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무려 3조 7천억원의 부채를 갚아 재정위기주의 자치단체에서 재정정상 단체로 환원됐다.

2016년 12월 매립 만료 예정인 1천584만여㎡(480만평)의 전체 수도권매립지 소유·관리권을 넘겨받고 쓰레기 반입료를 50% 이상 올리는 이른바 ‘매립지 4자 협의체(인천·서울·경기·환경부) 협약’을 맺고 현재 이를 이행 중이다. 10년 이상 지연된 제3연륙교 건설, 서울지하철 7호선 청라연장, 검단신도시 건설 사업도 해결해 현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주영민 수습·윤혜연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