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어제 이런 말을 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을 더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 그는 기회를 잡았다” 12일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다. 동시에 “기회는 한 번 뿐(it’s a one-time shot)이다”라고 했다. 미국이 요구해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다시 한 번 강조한 의미로 보인다. 트럼프답다. 회담 직전까지 상대를 몰아세워 이익을 챙기는 특유의 거래 기술이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날 발언에서 우리를 불안케 하는 부분도 있었다. “김 위원장에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회담을 오래 하진 않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할지 여부는) 1분 이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언제든 판을 깰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세계적 관심이 집중된 회담이다. 트럼프의 최대 정치 치적이 될 수도 있는 담판이다. 설마하니 난데없이 판을 깨겠는가. 그럴 리 없다기보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게 우리 심정이다.
그런데 이런 투박한 말 한마디가 지금의 한반도 정세를 설명하는 더 없는 표현이다. 4월과 5월 남북 정상회담을 보며 많은 이들이 장밋빛 미래를 확신했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여기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통일 세력’과 ‘반통일 세력’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도 여기서 만들어졌다.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서의 종전 선언 가능성을 두고는 마치 남북 대치 상황의 종료가 다가온 듯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것도 사실이다.
냉정해야 한다. 남북문제는 북미 관계가 모든 걸 틀어쥐고 있다. 개성공단 가동 재개, 북한 철도 사업 협력 등 희망적 기대도 모두 북미 관계에 달려 있다. 안타깝고 굴욕적이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 북미 관계의 아주 작은 틈바구니가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다. 그런데 이게 한 치 앞을 모른다. ‘위대한 북한’이라는 긍정과 ‘1분이면 끝난다’는 부정까지 극과 극의 예상이 트럼프로부터 나오고 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모두의 바람대로 회담이 잘됐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끝나나. 아니다. 회담을 통해 이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미국이 내놓을 경제제재, 북한 체제 보장이 미국 내 ‘의회 절차적 한계’에 놓여야 한다. 경우에 따라 상원의 표결이 이뤄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의 핵 폐기나 핵무기 반출 등은 중국 러시아와의 영향권에 든 문제다.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지 확신할 수 없다. ‘패싱’ 불만에 쌓인 일본의 외교적 훼방도 여전히 변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여유와 신중함이다. 12일 회담 결과에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 아주 긴 여정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는 30년 걸린다’는 전문가 얘기를 남북 관계에 초치려는 과장이라고만 여기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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