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태국 해변에서 구조돼 치료를 받다 숨진 돌고래의 뱃속에서 80여 장의 비닐봉지가 나왔다. 비닐봉지를 토해내며 죽어가던 돌고래를 부검해보니 배 속에 비닐이 가득했다. 비닐을 먹이로 착각해 삼킨 것이다. 스페인의 한 매립지에선 투명한 푸른색 비닐봉지에 온몸이 갇혀버린 황새가 발견됐다.
2015년 코스타리카 연안에선 바다거북의 한쪽 코에 12cm 길이의 플라스틱 빨대가 깊숙이 박혀 고통받고 있는 것을 구조대가 펜치로 뽑아낸 적이 있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거북은 극심한 고통에 눈물을 흘리며 입을 쩍쩍 벌릴 뿐 어찌하질 못했다. 이 동영상을 보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크게 확산되진 못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매년 800만톤 이상 바다로 흘러가 해양생물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북태평양에서 한반도 7배 크기의 플라스틱 쓰레기섬이 발견됐다. 2015년 기준 한국의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연간 132.7㎏으로 미국 93.8㎏이나 일본 65.8㎏보다 많다. 그만큼 많이 버린다는 얘기도 된다.
지구가 플라스틱 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양동물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플라스틱 제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도 올해 환경의 날 주제를 ‘플라스틱 오염 퇴치’로 정하고 해결책 마련에 나섰다.
일회용 플라스틱이 환경오염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미국과 유럽에선 정부와 기업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빨대 퇴출’ 움직임이 일고 있다. 플라스틱 중에서도 ‘빨대’가 타깃이 된 것은 가볍고 작아서 재활용이 어려운 데다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잠깐 사용한 빨대 하나가 분해되는데 500년 이상 걸린다니 끔찍한 일이다.
유럽연합(EU)은 오는 2021년까지 빨대와 페트병, 면봉 등 10여 종의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스위스, 캐나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도 식당과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 커피스틱을 금지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다.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는 영국과 네덜란드 등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고 종이나 친환경 소재 빨대로 대체하는 사업을 시범 시행하고 있다.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이 세계 2위 수준인 우리는 플라스틱 빨대 관련 대책이 없다. 환경부 주도로 재활용폐기물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50% 줄이겠다고 하나, 빨대는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줄이기는 캠페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 세계가 선포한 ‘빨대와의 전쟁’, 우리도 시작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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