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러진 느티나무 전설을 이어갈 행정의 책임

수원 영통의 느티나무가 비바람에 부러진지 며칠이 지났다. 가슴 아픈 여운이 여전히 남아 있다. 둘레 4.5m의 뼈대만 남아 있다. 펜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주말, 몇몇 주민의 기도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수령 530년 된 보호수가 주민에 남긴 잔상이 그렇게 깊고 크다. 화성행궁을 지을 때 나뭇가지를 잘라 썼다는 얘기는 수많은 전설의 시작일 뿐이다. 주민이 만들어온 전설은 훨씬 많다.

느티나무가 부러진 올해는 느티나무 축제가 시작된 지 꼭 12년 된 해다. 12간지의 해를 모두 넘기고 새로운 13년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현 영통구청장이 이곳 동장을 하던 13년 전 느티나무 축제를 시작했다. 구청장을 중심으로 12간지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런 시점에 나무가 부러진 것이다. 일부 주민들은 ‘12간지를 끝낸 시점에서 느티나무가 죽었다’며 아쉬운 전설을 말했다.

수원시와 주민들이 준비했던 또 다른 노력도 전설로 남았다. 올 6월 느티나무 축제 때 나무 주변에 특별한 치장물이 등장했었다. 두 개의 명패 걸이 철제 판이다. 한쪽에는 느티나무에 대한 주민의 감사 글이, 다른 쪽에는 느티나무처럼 되고 싶다는 소원 글이 걸렸다. 특히 감사 글 중에는 ‘500년 동안 살아와 줘서 고맙다’ ‘지금까지 마을을 지켜줘서 고맙다’ 등의 글들이 있었다. 이 또한 주민들이 나무에 마지막 인사를 남긴 전설이 됐다.

지명부터 전설적 요소가 강한 동네다. ‘靈通’(영통)의 사전적 의미는 ‘신령스럽게 서로 잘 통한다’다. 1990년대까지 이곳은 낮은 산과 밭, 논 등이 산재한 곳이었다. 통하는 곳이라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영통 신도시가 들어선 이후로 완전히 달라졌다. 사통팔달의 요지로 급변했다. 수원과 용인을 오가는 동서 도로의 중심이 됐고, 서울과 동탄을 연결하는 남북 도로의 중심이 됐다. 이런 지명과 어울린 느티나무여서 더욱 신령스러웠었다.

어느 것 하나 과학적 근거가 있는 얘기는 없다. 하지만, 그런 전설이 주민에게는 지역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정신적 매개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에 부러진 느티나무의 후속 처리가 관심을 갖는 것이다. 현재 구청에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접수 중이라고 한다. 주변의 잔수를 키우는 방법, 부러진 주 가지를 되살리는 방법, 미니어처를 만들어 전시하는 방법 등 다양한 의견들이 접수된 것으로 안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작업이다.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들어야 한다. 그렇게 모아진 의견과 전문가 식견을 결합해 전설을 살려갈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530년 된 나무를 왜 부러지게 두었느냐고 타박할 일은 아니다. 천명을 다한 느티나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가 진정한 행정의 영역이다. 그 행정의 시작과 끝은 주민의 의견을 소중히 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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