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폭주노인’의 그늘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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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남시 수정구의 한 주택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74세 남성이 형사 입건됐다.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로 이유로 72세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범행을 말리던 또 다른 여성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했다.

 

노인 강력범죄가 크게 늘고 있다. 예전엔 주로 범죄 피해자였던 이들이 가해자로 변하고 있다. 노인 범죄는 10대 청소년 범죄를 앞질러 이젠 골목길 비행 청소년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노인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력범죄로 법정에 서는 노인들도 급증했다. 부인을 여러차례 흉기로 찔러 살인미수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98세 노인에게 법원이 징역 4년을 선고한 사례가 있다. 감옥에서 100세를 맞아야 하지만 고령임에도 죄질이 무거워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 2월 서울고법에선 76세 남성이 살인 혐의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배가 나왔다’고 놀리던 이웃을 죽인 혐의다. 같은 달 80세 남성도 살인미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6년간 만나던 여성이 다른 남자를 만나자 음료수 병에 제초제를 넣어서였다.

 

법무부에 따르면 범죄로 수감 중인 만 65세 이상 수용자가 2016년 2천434명으로 2007년(782명)보다 3배 이상 늘었다. 강제추행, 강간 등이 많고 살인·방화 등 강력 범죄로 수감된 이도 상당수다. 노인 살인범들의 특징은 대부분 초범이고, 순간의 화를 억누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쌓여있는 분노가 폭발하면서 살인 및 성범죄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일본과 비슷하다. 일본에선 고령 범죄자 문제를 진단한 ‘폭주노인(暴走老人)’이란 책까지 나왔다. 전문가들은 노인 범죄의 원인을 정서적 좌절에서 찾는다. 은퇴 후 사회적 고립감과 경제적 빈곤 등에서 오는 정서적 좌절과 사회 불만이 폭력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폭주 노인은 개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큰 틀에선 고령화 사회의 그늘로 봐야 한다.

 

노인 강력범죄는 몇몇 폭주 노인을 엄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노인범죄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먼저, 국가적 차원에서 노인이 최저 생활을 할 수 있는 소득보장 제도를 마련해줘야 한다. 노인에 대한 정서적 지원을 통해 노인들의 고립감과 상실감을 해소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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