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트럼프의 ‘平和비용 계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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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x Romana’ 흔히 ‘로마의 평화’로 번역된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로 부터의 약 200년 로마가 누렸던 번영과 평화를 말하기도 하고, 로마에 의해 지탱되는 평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서만 식민지와 주변 국가의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며 로마가 없는 평화는 ‘가짜평화’라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Pax Romana’에 빗대어‘Pax America’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세계평화는 미국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 핵 문제를 풀어 가는데도 그렇다. 그러나 미국의 운전대가‘미국의 평화’를 위해서 인지, ‘세계평화’를 위한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가령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 있던 미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것이 대표적인 예다.

 

예루살렘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이지만 국제법상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으며 따라서 모든 나라의 대사관은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에 주재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프랑스 등 우방국들의 반대에도 끄떡 않고 대사관을 옮겼다.

 

그러자 중동에 긴장이 조성되고 평화가 위협받기 시작했다. 미대사관 이전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과의 충돌로 벌써 60명이 죽었고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란의 한 강경파 단체는 예루살렘의 미대사관 폭파에 10만달러(한화 1억7천만원)의 현상금까지 걸었다. 평화를 위협하는 또하나의 불씨가 생긴 것이다.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것이 평화라고 생각하는 이른바 ‘Pax America’다.

 

이번 싱가포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도 그렇다. 그동안 미국이 요란스럽게 외쳐대던 북한 핵의 완전폐기를 검증하는 이른바 CVID는 꼬리를 감추고, 그 대신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이라는 큼직한 선물을 북한에 안겨 주었다.

 

물론 상응한 조치로 북한은 미사일 엔진시험장을 없애겠다고 했지만 완성된 미사일이 문제이지 생산을 멈춘 엔진시험장의 효용성은 얼마나 있는 것일까? 그리고 50기 안팎으로 추정되는 핵폭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것이 잘 풀리고 북한과 미국 관계가 좋게만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평화’는 보장되겠지만, 그 과정이 길어 질 수밖에 없고, 그 안에 돌발 변수라도 발생한다면 머리위에 미사일과 핵폭탄을 이고 살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위기를 느끼게 마련이다. 그래도 미국이 이렇게 하는 것을 ‘평화’라고 생각하고, 또한 미국의 중간선거에도 유리하다는 정치적 판단까지 작용한다면 운전석에 앉아 있는 미국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특히 주한 미군의 철수문제가 이 시점에 등장하는 것에 솔직히 우리는 불안하다. 미국도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고 우리 청와대도 주한미군 문제는 북한 핵과 관계없는 것이며 한미 동맹에 속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런 말이 나오는 자체가 불길하다. 국제정치는 ‘아니라’고 하면서 진행되고 시작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다 된 것처럼 장담하며 허풍 떠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트럼프 미대통령은 북한 핵 폐기 후의 경제지원을 우리나라와 일본에 떠맡기는 발언도 했다. 북한의 위협에 가장 근접한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제는 북한 핵이 미국 안전을 위협한다며 전쟁도 불사할 것처럼 확대 하더니 계산서를 넘길 때는 셈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역시 ‘Pax America’의 논리일까?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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