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품격과 교양 있는 국가는 불가능한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예멘 난민을 향한 악성 글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상스러움을 넘어 극단 혐오의 쓰레기장이고 분노의 배설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자 ‘청원 게시판이 놀이터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분노를 털어놓을 곳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청와대 게시판은 당초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합리적 공론이 형성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시작됐으나 폐해가 너무 크다.

물론 긍정적 측면도 있다. 20만 명 이상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는 청와대에서 답변을 남기는데 지금까지 36개의 청원에 답변이 달렸다. 실제로 정책에 반영되기도 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많은 국민이 이 제도가 존속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정부와 직접 소통할 창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보완할 점으로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28.8%나 된다.

악성 글로 도배된 현 상황에서 설문조사를 해 보면 제도 개선에 더 많은 의견이 나올 것이 틀림없다. 청와대 게시판 뿐 아니라 SNS상의 악성 댓글은 이제 개인과 가족과 사회를 파괴하는 괴물이 됐다.

요즘 악플러들은 비호감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신공격성 악성 댓글로 도배질한다. 익명성 뒤에 숨어 남에게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주는 이런 자들에게 ‘표현의 자유’ 같은 말이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주고 함께 책임 의식을 갖는 국가를 ‘품격 있는 국가’라 부른다.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자제하면서 흑백논리보다는 사안에 따라 수용의 폭을 조절하는 사회를 ‘교양 있는 사회’라 부른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고상하고 원만한 품성을 기르는 ‘교양’이란 단어를 가식과 위선이란 의미로 쓰기 시작했다. ‘교양 떨고 있네’ ‘교양과 가식은 종이 한 장 차이’ 등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겼다.

그러다 보니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말이 솔직한 말로, 함부로 남을 비난하고 원색적인 욕설이 마치 논리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면죄부를 받았다.

쓰레기 글이 넘치면 절실한 글은 뒤로 숨는다. 실명제만이 답이다. 인터넷 실명제는 2012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다. 다시 제소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도 현행 익명제의 저의가 의심받지 않으려면 좀 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

볼테르는 ‘나는 네 의견에 반대하지만, 네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겠다’라고 말했다는데 볼테르가 살아 돌아와 오늘의 현실을 보면 이 말은 다음과 같이 바꾸어야 할 것이다.

‘나는 네 의견에 반대하지만, 네가 이름을 밝힌 채 말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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