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관행이라는 이름의 특수활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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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보위원장 특수활동비를 받지 않겠습니다.”

필자는 지난 19일 정보위원장으로서 정보위원회 특수활동비를 받지 않겠다는 공문을 직접 작성해 국회 운영지원과로 발송했다. 이미 바른미래당 의원들 앞에서 정보위원장이 되면 특수활동비를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고, 정부의 예산을 편성하고 감독하는 국회가 마땅히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하는 ‘예산 및 기금 운영계획 지침’에 따르면, 특수활동비란 정보 및 사건수사와 그밖에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이 특수활동비는 수령자가 서명만 하면 사용처를 보고하지 않아도 되고 영수증 없이도 사용할 수 있어 ‘눈 먼 돈’으로 비판받아 왔다.

지난 정부에서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청와대가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특수활동비가 ‘권력자의 쌈짓돈’으로까지 변질되기도 했다. 청와대와 정부의 각 부처에서 매년 약 8천억원 이상의 특수활동비를 집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회도 80억원 이상의 특수활동비를 사용했다고 한다.

 

국회부터 이 오래된 나쁜 관행인 특수활동비를 없애야 한다. 국회 업무 중 공개되면 안 되는 ‘특수한’ 업무가 있는가? 필자는 거의 없다고 단언한다. 국회의 특수활동비 문제가 어제오늘 거론된 것이 아닌데도 국회는 사용처를 전혀 알 수 없는 특수활동비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껏 유지하고 있다.

 

이러하니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이 따가울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한국갤럽이 공개한 ‘2017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국회는 의료기관과 교육기관, 중앙부처와 지자체, 사법계, 대기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장 낮은 신뢰도를 받았다. 통계청의 ‘2017년 한국의 사회지표’에서도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4점 만점의 1.8점을 받았는데, 1점대로는 전체 기관 중 유일했다.

 

국회가 권위적이고 폐쇄적이며, 특권을 누리는 집단으로 비춰지고 또 그렇게 행세해 왔기 때문에 국민들은 국회를 믿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국회가 영수증도 없이 특수활동비를 편의대로 집행하는데, 행정부의 예산 오남용을 제대로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겠는가?

 

특수활동비 논란이 불붙고 있는 지금, 국회의 과감하고도 선제적인 결심과 행동이 필요한 때다. 국회가 먼저 잘못된 관행, 특수활동비 악습을 단칼에 잘라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가 영원히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가 특수활동비 수령을 거부한 것은 나 하나 생색내고, 튀어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먼저 해야 하는 일인데, 마침 칼자루가 내게 주어졌기에 실천했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사항을 많이 다루는 정보위원회에서 특수활동비를 받지 않으면 활동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국회 정보위원회는 국가 정보기관이 특수한 비밀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곳이지 직접 기밀 업무를 하는 곳은 아니다.

 

국회의 특수활동비는 폐지가 정답이다. 국회가 지금까지 특수활동비로 실시해 온 사업이나 활동 중 필요한 예산은 업무추진비 형식으로 증빙자료를 남기고 국민에게 공개하며 투명하게 집행하도록 운영 방식을 바꾸면 문제될 것이 없다.

 

이미 국회 내에서도 공감대가 충분히 만들어지고 있고 어느 때보다 강한 의지도 느껴진다. 필자가 시작한 상임위원회 특수활동비 수령 거부가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와 투명한 예산운용 나아가 국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

 

이학재 국회의원(바른미래당·인천 서구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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