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뿌리 못 뽑은 ‘일제 왜곡지명’

의정부 ‘발곡’·하남 ‘대사골’·김포 ‘도룡동’ 등 23곳
고유지명 되찾고도 일부 지역 전철역·상호에 쓰여

일본이 일제강점기 시절 왜곡한 경기도 내 지명을 정부가 지난 1995년 일괄 정비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익숙하다’는 이유 등으로 20년이 넘게 고유지명이 아닌 왜곡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자체적으로 왜곡지명 수정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개선의지를 보이는 지역도 있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14일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995년 8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된 전국 37개 지역을 우리 고유지명으로 환원했다. 총 37개 지역 중 경기도 관할은 29곳으로, 이 가운데 23개 지역이 중앙지명위원회 심의를 통해 고유지명을 되찾았다. 

 

그러나 도내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일제 왜곡지명 사용이 빈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정부시 신곡동의 ‘발곡(鉢谷)’이라는 지명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고유지명인 ‘발우수리’를 한자로 표기하고자 바꾼 것으로, 지난 1995년 지명변경 당시 발우수리 이름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로 여전히 발곡이라는 지명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 지난 2012년 7월 들어선 전철역의 이름이 ‘발곡역’으로 정해졌고, 인근 학교명에도 발곡이 포함됐다. 의정부에 거주 중인 A씨(25)는 “25년간 의정부에서 살아온 토박이인데, 발우수리란 말은 처음 들었다”며 “전철역 이름에 따라 당연히 지명이 발곡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하남시 초이동의 ‘대사(大蛇)골’ 역시 커다란 논들이 많다는 뜻의 ‘큰배미골’이라는 고유지명을 환원 받았다. 그러나 마을회관 명칭이 아직도 대사골마을회관으로 돼 있고, 주변 상회와 음식점 등도 대사골을 상호에 기재하는 등 일제 왜곡지명 사용이 빈번했다. 김포시 대곶면의 일제 왜곡지명인 ‘도룡동(道龍洞)’도 고유지명인 ‘모정(牟井)’으로 변경됐지만, 지역에서는 도룡동사거리 등 여전히 왜곡지명을 사용 중이다.

 

반면 지자체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일제 왜곡지명 개선에 나서는 지역이 있어 대비를 이루고 있다. 파주시는 지난 2014년 관내 문산읍과 문산리의 한자를 자체적으로 ‘문산(汶山)’에서 ‘문산(文山)’으로 고쳤다. 일제강점기 시절 바뀌었던 문(汶)자가 ‘불결하다’, ‘더럽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은 “일제가 우리나라 지명을 바꾼 것은 민족얼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우리의 정신을 없애고자 했던 것”이라며 “악의적으로 일본이 변경한 왜곡지명을 하루빨리 고유지명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일제 왜곡지명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익숙한 왜곡지명을 주민들이 선호하고 있어 관련 홍보 강화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태병ㆍ김해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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