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어 줘서 고맙다. 나의 딸아…”
수십 년간 메말라 있던 눈물샘이 뜨거운 ‘혈육의 정’으로 가득 채워졌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20일 오후 금강산에서 진행됐다. 이번 상봉행사는 지난 2015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 만이다. 남북 이산가족의 첫 만남인 단체상봉은 이날 오후 3시부터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89명의 남측 이산가족과 동반 가족 등 197명이 북측 가족 185명과 분단 이후 65년 만에 처음으로 재회한 것이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오는 22일까지 2박3일간 6차례에 걸쳐 11시간 동안 얼굴을 맞댈 기회를 가진다. 이틀째인 21일에는 숙소에서 오전에 2시간 동안 개별상봉을 하고 곧이어 1시간 동안 도시락으로 점심을 함께한다. 이산가족들은 마지막 날인 22일 오전 작별상봉에 이어 단체 점심을 하고 귀환하게 된다.
상봉 첫 날인 이날 단체상봉 행사장은 반백 년 만에 혈육을 다시 만난 가족들의 눈물로 가득 차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남측의 이금섬 할머니(92)가 아들 리상철씨(71)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오자마자 아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펑펑. 아들 상철씨도 어머니를 부여안고 감격의 눈물 쏟아내. 특히 상철씨는 어머니에게 한 장의 사진을 건내며 “아버지 모습입니다. 어머니”라고 말하고는 또다시 오열. 이금섬 할머니는 “전쟁통에 가족들과 피난길에 올라 내려오던 중 남편, 아들 상철 등과 헤어져 생이별을 견뎌야 했다”고 설명.
○…남측 한신자 할머니(99)가 북측의 두 딸 김경실(72)ㆍ경영씨(71)를 보자마자 “아이고”라고 외치며 통곡. 한신자 할머니와 두 딸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잇지 못한 채 서로 바라보고 눈물을 훔쳐. 한 할머니는 전쟁통에 두 딸을 친척 집에 맡겨둔 탓에 셋째 딸만 데리고 1ㆍ4 후퇴 때 남으로 내려오면서 두 딸과 긴 이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며 눈물.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올해 세상을 등진 가족들의 사연이 속속 알려지면서 주변의 아쉬움을 사기도. 전쟁통에 어머니와 여동생만 고향인 황해도 연백에 남겨둔 채 피난길에 오른 김진수씨(87)는 올해 1월 여동생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 북측의 조카 손명철씨(45)와 조카며느리 박혜숙씨(35)를 대신 만나.
김씨는 상봉 전 “금년 1월에 갔다고 하대…나는 아직 살았는데”라며 안타까운 표정 감추지 못해. 이밖에 2000년부터 이산가족 찾기 신청을 한 조옥현씨(78)와 남동생 조복현씨(69)도 6ㆍ25전쟁 때 헤어진 북측의 둘째 오빠가 올해 사망해 대신 둘째 오빠의 자녀들을 만나 아쉬움을 달래.
조씨는 “한적에서 연락받기 전 동생 복현이가 전화해 ‘큰형이 살아있으면 85세다’라고 말했다”면서 “그래서 북한에서 오빠들이 살아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얼마 있다가 적십자에서 전화가 왔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쳐.
○…사진으로만 형 모습을 봐도 연신 쏟아지는 눈물. 남측의 최기호씨(83)는 납북된 맏형 최영호씨(2002년 사망)의 두 딸인 선옥(56)ㆍ광옥씨(53)를 만나. 딸 선옥씨가 가져온 형의 사진들을 보며 울음을 그치지 못한 최씨는 눈가에 손수건을 한참이나 갖다 대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해. 최씨는 조카가 가져온 맏형의 가족사진 속 인물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물으며 아쉬움 달래.
이에 조카들도 삼촌을 만나자 오래전 세상을 떠난 부친이 생각난 듯 울먹여. 최씨의 맏형은 충청북도 청주에서 살다가 1ㆍ4 후퇴 당시 의용군에 징집돼 북으로 끌려간 것으로 전해져. 당시 최씨 가족은 형편이 어려워 사진도 못 찍었기 때문에 스무 살의 영호씨 모습만 희미하게 기억해.
박준상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