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퇴직자들의 재취업 비리가 ‘불공정’ 수준을 넘어 상상을 초월한다. 공정위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18명의 퇴직 공무원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ㆍ기아자동차 등 16개 기업에 압력을 넣어 재취업시켰다. 이 과정에서 전·현직 수뇌부 12명이 조직적으로 개입했음이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공정위 퇴직자들의 재취업 조건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퇴직자 대부분은 취업한 대기업들로부터 억대 연봉에 차량과 법인카드는 기본이고, 연봉과 별도의 성과급을 받았다. 대기업 고문ㆍ자문으로 취업한 전관 3명은 사무실이 없었다. 취업 조건이 ‘출근할 필요 없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최대 1억9천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공정위로부터 취업 부탁을 받은 대기업이 서류상 고문 자리를 만들어 월급만 줬다는 얘기다.
공정위의 퇴직 간부 챙기기는 노골적이고 고압적이었다. 운영지원과에서 작성한 ‘재취업 계획안’이 위원장에게까지 보고됐고, 수뇌부가 나서 대기업을 압박했다. 계획안에 ‘고시 출신은 연봉 2억5천만원, 비고시 출신은 연봉 1억5천만원’ 등으로 재취업 조건까지 기업에 제시했다. 수백, 수천억원의 과징금 부과 권한을 가진 공정위가 전속고발권 등을 근거로 대기업의 ‘불공정 편의’를 봐주며 불법 특혜를 누린 것에 대해 국민적 공분이 하늘을 찌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0일 재취업 비리에 대해 사과하며 조직 쇄신안을 내놨다. 앞으로 퇴직 관료의 재취업 과정에 일절 관여하지 않을 뿐 아니라 퇴직자의 재취업 이력을 10년 동안 홈페이지에 공개하기로 했다. 현직자와 퇴직 재취업자가 사건 관련해서 접촉하는 것도 전면 금지했다. 21일에는 공정거래법 개편과 관련해 가격담합, 입찰담합, 시장분할 등의 위반 행위에 대한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고, 담합 등에 부과하는 과징금의 최고 한도를 올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정이 공정위 사태와 관련, 불을 끄느라 수선을 떨지만 쇄신방안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담합이나 갑질 조사 등을 통해 기업 위에 군림해온 공정위 공무원 권한이 아직도 막강한데 쉽게 개선되겠는가 싶다.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 공무원이 퇴직 전 5년간 맡았던 업무와 관련된 곳에 3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정년을 앞둔 간부를 기업 업무에서 미리 빼주는 수법으로 법망을 피해 갔다. 퇴직 공직자들의 ‘갑질 재취업’이 공정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부 각 부처는 퇴직자 재취업 현황을 전수조사해 유사 비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는 지방정부도 마찬가지다. 퇴직자가 근무처의 힘을 이용해, 또는 권력자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공기업과 민간업체 등에 부당하게 취업하는 ‘낙하산’ 인사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